위기의 DTC 유전자 검사 산업
국내 규제에 시장성 불투명
"검사 가능 항목 여전히 지나치게 낮아"
규제 낮은 외국 기업과의 경쟁서 밀려
코스닥 상장사인 A 유전자 분석 기업은 최근 1대당 7억원에 이르는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장비 3대 중 2대를 매물로 내놨다. 이 NGS 장비는 세계 최대 유전체 분석 장비 업체 일루미나로부터 들여왔다. 하지만 국내 여러 규제 탓에 소비자 직접 의뢰(DTC·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 건수가 갈수록 줄면서 장비를 처분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A기업 대표는 "시장성이 떨어지고 있어 지금은 분석 장비 1개조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쩔 수 없이 올해 직원 4명을 내보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소비자 직접 의뢰(DTC) 유전자 검사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DTC 유전자 검사는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키트로 타액 등을 유전자 검사기관에 전달하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알 수 있는 서비스다. 국내에선 DTC 검사가 2016년부터 시행돼 현재 탈모, 피부노화, 운동 등 웰니스(웰빙·행복·건강)에 한정한 101개 항목까지 검사가 가능하다. 당뇨병, 암, 치매 등 특정질환에 대한 DTC 검사는 금지된다. 현재 업체마다 많게는 80여개, 적게는 40여개의 웰니스 항목에 대해 DTC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검사 가능 항목 터무니없이 적어"
유전자 분석 업계는 "여전히 유전자 검사 역량에 비하면 검사 가능 항목이 터무니없이 적다"고 입을 모은다. B 유전자 분석 기업이 하나의 유전체에서 읽을 수 있는 웰니스 관련 유전자 정보는 2000여 가지다. 소비자 건강 증진에 도움되는 유전자 정보가 무수한데도 5%만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B기업 관계자는 "법에서 정한 검사 항목만 추출하고 나머지 유전자 정보를 폐기하는 것도 일"이라고 전했다. 현재 DTC 검사에는 허용되는 항목을 일일이 열거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적용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글로벌 DTC 유전자 검사 시장은 2021년 14억달러(1조8500억원)에서 2028년 42억달러(5조5600억원)로 2배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DTC 검사 시장 규모는 아시아경제가 한국바이오협회를 통해 추산한 결과 지난해 기준 300억원 안팎이다. 국내 DTC 검사의 근본적인 규제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각종 규제 특례가 종료되면서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검사 가능 항목을 넓히기 위해 DTC 인증제를 시작했다. 검사 역량 등에 대한 평가를 거쳐 복지부 인증을 얻으면 별도의 웰니스 항목에 대해서도 검증을 거친 뒤 DTC 검사를 할 수 있게 했다. 이 때문에 후각 민감도(마크로젠), 곱슬머리(제노플랜코리아), 빛 재채기 반사(테라젠헬스) 등이 최근 검사 가능 항목에 새롭게 추가될 수 있었다.
규제에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린다
하지만 가능 항목을 승인받는 데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걸려 해외 유전자 분석업계와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해외 주요 유전자 분석 기업들은 300~400여개의 유전자 정보를 제공한다. 상품성 있는 항목들을 기업들이 선별한 결과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추가 항목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검증 절차를 1년 내내 받아야 한다"며 "의료기관이 환자 진단하는 수준의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웬만한 유전자 전문 인력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청소년은 사실상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불만 사항으로 꼽힌다. 최초 승인됐던 12개 항목 이외 추가 항목에 대해서는 우선 성인만 가능하다. 만약 추가 항목의 검사 대상에 청소년을 넣고 싶다면 유전자 분석 기업이 그간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구된 관련 논문을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제출해야 하는데 애초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한 임상연구들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성장기 청소년이 자신의 건강 정보를 통해 개선점을 찾고 나아가 일어날 수 있는 질환에 대해 예방하려 하는 걸 왜 막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러 규제로 DTC 검사가 활성화되지 못한 탓에 업계 대부분은 B2B(기업 간 거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의 유전자 건강 정보를 토대로 관련 제품을 추천해주는 구조다. 하지만 최근 여러 기업과의 계약 종료,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DTC 유전자 검사 데이터의 2차 활용이 불가능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우회적으로 돌려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 관련 제품의 홍보 효과가 크지 않아서다. 2020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승인받은 건강기능식품 추천 판매는 2년간의 시범사업 후 그대로 종료되기도 했다.
경기도 판교의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건강 관련 기업들은 DTC 검사 정보를 활용해 자사 제품 판매를 극대화하고자 계약을 한 건데, 막상 대부분 불가능하다 보니 메리트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최근 여러 계약이 연장되지 않고 그대로 종료돼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나마 DTC 검사에 관심있는 소비자들마저도 해외를 통해 우회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웰니스 항목에 대해서는 규제가 없는 데다 특정 질환에 대한 예측까지 가능해서다. 검사 한 번에 20만원이 넘는 만만찮은 비용을 내야 한다면 되도록 많은 유전자 정보를 줄 수 있는 외국 기업 검사가 낫다는 판단이다.
주요 유전자 분석 업체들은 DTC 검사 산업의 위기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마크로젠과 클리노믹스는 각각 마이펫진, 도그노믹스라는 이름의 동물 DTC 검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규제가 없는 동물 DTC 검사는 유전 질병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할 수 있다. 랩지노믹스, 메디젠휴먼케어는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위해 규제장벽이 낮은 해외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DTC 유전자 검사 산업이 우리나라에선 킬러 규제와 의료계 눈치에 발 묶여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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