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변화무쌍한 한국정치, 당명 변경 지속
1987년 이후 최장수 정당, 한나라당
1997년 12월창당, 2012년 2월 소멸
선거 때마다 달라지는 정당 이름은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실제로 3년 전 제21대 총선에서 본인이 투표했던 정당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미 없어진 정당도 있고, 정당 통폐합 과정에서 바뀐 정당도 있다. 선거 때마다 슬그머니 이름을 바꾸는 정당도 있다. 미국의 민주당, 공화당처럼 이름만 대면 그 당의 존재와 정체성을 연상하게 할 수는 없을까. 결국 정당의 역사와 맞물려 있는 고민이다.
한국 정치의 변화무쌍함을 고려할 때 하나의 이름으로 오랜 기간 명맥을 이어온 정당은 손에 꼽을 정도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3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통령 당선 당시 소속 정당 이름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김대중 후보는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후보는 새천년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는데 모두 다른 정당 후보로 당선됐다는 것은 정당 이름이 그만큼 자주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만 그런 게 아니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3년 전 총선 때 미래통합당이라는 이름으로 선거에 임했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정당이다.
2017년 대선 당시에는 홍준표 후보를 내세웠는데 당시 정당명은 자유한국당이었다.
한국 정치에서는 10년의 세월을 넘어 하나의 이름으로 존재한 정당이 없었을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전에는 박정희 정부의 민주공화당(17년 6개월)이 존재했다. 1987년 이후 체제에도 10년이 넘는 세월, 하나의 이름으로 존재한 정당이 있었다.
보수정당의 고유명사로 인식되던 한나라당이다. 지금도 국민의힘을 부를 때 한나라당이라 말하는 이가 있다. 한국 정치에서 한나라당은 그 자체로 보수정치의 근간이었다.
보수정치의 가장 빛나던 역사도, 한국 정치에 기록된 사상 초유의 압승도 모두 한나라당 시절에 이뤄낸 결과물이다.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을 앞둔 1997년 11월 창당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2월 새누리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4년 3개월간 한나라당으로 존재했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통해 500만표가 넘는 압승을 경험했다. 200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국 정치 역사를 다시 쓴 압승의 주인공이 됐다. 한나라당은 야당으로 더 오래 있었지만, 당력으로만 본다면 역대 가장 강력한 정당 중 하나로 불릴만하다.
14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으로 중요 선거에 나섰으니 유권자들도 정당명을 헷갈릴 이유가 없었다.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큰 어려움 없이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역시 선거와 관련이 있다.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변경을 시도했다. 개혁 의지와 2040세대에 대한 고려 등을 이유로 당명이 바뀌었다.
한나라당의 보수 이미지로는 당시 젊은 세대의 표심 공략에 한계가 있으니 정당명 변경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은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으로 치렀다.
하지만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을 버린 선택이 옳았는지는 의문도 있다. 새누리당 출범 이후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지금의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11년의 세월 동안 정당명은 계속 바뀌었다. 각 정당의 평균 역사는 3년이 되지 않는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민주당도 끊임없이 정당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정당명이 바뀐 시기는 2015년 12월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름으로 7년 5개월의 역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민주당의 지난 역사를 고려하면 오래 존속되는 정당명이다.
더불어민주당도 한나라당처럼 1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까. 2020년 창당한 국민의힘은 언제까지 그 이름으로 존재하게 될까. 14년 3개월이라는 한나라당의 역사를 넘어설 수 있을까.
2024년 4월 총선과 2027년 3월 대선에서 지금의 여야가 어떤 이름의 정당으로 유권자를 만날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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