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제14대 총선, 서울 노원을 재검표
임채정 투표 묶음 100장 엉뚱하게 집계
대법원 진행한 재검표로 당락 바뀌어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의 아픔을 곱절 이상으로 느끼는 이들이 있다. 아깝게 낙선한 후보들이다. 지난 선거운동 상황을 떠올리며 후회의 밤을 지새워도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마지막 승부수를 이렇게 띄웠다면”….
후회를 해봐도 이미 지난 일이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의 국회의원 선거는 단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사람이 당선자가 된다. 낙선자는 아무리 아깝게 떨어져도 그저 낙선자일 뿐이다.
아깝게 떨어진 사람은 누구나 재검표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다시 개표하면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문제는 재검표 시도라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재검표를 요구하려면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데 변호사 비용을 포함해 소요되는 금액이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의 정치인은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거액이다.
또 하나는 재검토를 선택하는 것에 관한 정치적 부담이다. 민심의 선택을 겸허하게 수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옹졸한 정치인으로 비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등 선거를 통해 중요한 자리를 맡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잘 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재검토 운운하는 행동이 본인의 정치 그릇을 왜소하게 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국회의원 재검표를 통해 결과를 뒤집는 것 자체를 허황한 생각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확률은 높지 않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재검표 절차를 통해 국회의원 배지를 되찾은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것은 1992년 7월20일 서울 노원구을 재검표다. 이날 재검표는 대법원 특별2부 심의로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101호 법정에서 열렸다.
민주당 임채정 후보가 재검표를 신청했다. 상대는 민자당 김용채 후보였다. 애초 선거관리위원회 개표에서는 김용채 후보가 4만 551표를 얻어 4만 515표를 얻은 임채정 후보를 36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임채정 후보의 재검표 요구에 김용채 후보 쪽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확보한 서울 노원구을 국회의원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재검표는 낙선한 사람 못지않게 당선된 사람도 좌불안석으로 이어지게 하는 정치 이벤트다.
1992년 제14대 총선, 서울 노원구을의 진짜 주인은 누가 됐을까.
당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노원을 재검표 결과는 의외의 지점에서 갈렸다. 재검표 당일인 1992년 7월20일 오전 11시께 노원구 상계5동 제2투표소 투표함에서 임채정 후보에게 기표가 된 100장짜리 투표지 묶음 하나가 김 의원의 득표로 잘못 계산됐음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임채정 후보 쪽에서는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최종 집계 결과 임채정 후보가 172표를 오히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임채정 후보는 4만601표, 김용채 후보는 4만429표를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임채정-김용채 후보의 재검표는 100장 투표지 묶음의 분류 잘못이 인정됐기에 개표 결과 수정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만약 유효, 무효표를 둘러싼 논쟁이 당락을 가를 경우 법적인 절차는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양상으로 흐를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제14대 국회 서울 노원을 국회의원은 임채정 후보의 차지가 됐다. 임채정-김용채 재검표 사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의도 정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30년과 지금은 개표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투표지 분류기가 도입된 이후에는 1992년 사례와 같은 투표지 묶음 분류 잘못과 같은 실수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재검표를 통해 당락을 뒤집을 수 있는 확률 역시 훨씬 더 낮아진 셈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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