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출신 1호 벤처캐피털리스트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
의사 출신 1호 벤처캐피탈리스트이자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대모'로 불리는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는 사람을 살리는 기술과 그렇지 않은 기술을 가려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인생의 방향을 틀기 1년 전인 2015년에 아찔한 경험을 했다. 당시 사람은 다 아는 A기업 관련 자문 요청을 받았다. 간에 직접 투여하는 암 치료제로, 세상을 바꿀 엄청난 기술이라고 소개 받았다.
문여정 상무 판단은 달랐다. "제가 보기엔 쓰레기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문 상무는 "간에 직접 투여하는 암 치료제라는데 간은 갈비뼈 안쪽에 숨어 있어 직접 투여하려면 주삿바늘이 엄청나게 길어야 한다"라며 "더구나 간은 피가 엄청 많이 나는 조직이라 환자에게 절대 쓸 수 없는 기술이라고 봤다"고 당시 일을 떠올렸다. 그는 "간암 환자를 한번이라도 봤으면 이런 식으로 치료제를 못 만든다"며 "환자에게 쓸 수 없는 기술을 파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환자를 생각하지 않고 약이나 기술을 만들면 천벌을 받는다"라고도 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문 상무는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산부인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산부인과 전문의다. 연세의대 대학원 약리학 박사과정을 거쳐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2년간 근무한 후 2016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변신했다.
그는 자신의 경력과 전혀 엉뚱한 길을 간다고 여기지 않는다. 의사 출신으로서 헬스케어 산업에 투자하는 일이 의사라는 직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대학병원에서 좌충우돌 일하면서 배우고 익힌 경험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을 고르고 투자하는 안목을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문 상무가 발굴한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이 대표적인 사례다. 루닛은 AI로 방사선 이미지를 분석해 암 유무를 진단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문 상무는 "AI로 영상 판독을 도와주는데 맹장 수술을 하러 왔다가 수술 전 검사로 폐암을 초기에 발견해 완치된 케이스가 있었다"라며 "그럴 때마다 정말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고, 세상이 원하고, 돈이 되는 게 모두 해당되는 일을 하고 있어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자신의 일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운 대목이다.
그는 헬스케어 기술이 인간을 더욱 이롭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유익한 기술에 돈이 흐르게 하는 것에 전력을 쏟고 있는 이유이고, 그게 그가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문 상무는 "수술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기술, 불면증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소아 자폐를 빨리 진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등이 상용화가 되면 의사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일이 굴러가게 하는 사람"
1979년생인 문 상무는 어릴 때부터 좀 특이한 여자아이였다고 말했다. 반장보다는 '부반장' '총무' 스타일이었다. 목소리 크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친한 친구는 많은데 반장은 한 번도 못한 '반장의 오른팔'이었다고 했다. 아쉽지는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일이 굴러가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는 "총무 시키면 돈 제일 잘 걷고, 문자를 돌리라고 하면 싹 다 돌리고 모여서 밥 먹자고 하면 식당 잡고 이런 걸 잘한다"라며 웃었다.
의사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변신한 것도 '병원 밖의 삶이 너무 궁금해서'였다. 의사가 아닌 딴짓을 하고 싶었다. 세상을 이롭게 할 일을 하고 있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는 "병원을 나온 지 9년이 돼 가는데 앞으로의 10년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내가 의사 커리어를 버리고 왔다고 보기도 하지만, 그게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투자를 더 잘할 수 있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오지라퍼'이자 '프로 참견러'인 그에게 벤처캐피탈 심사역은 맞춤옷 같았다. 문 상무는 "투자자들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데 어떤 투자자들은 느긋하게 지켜보는가 하면, 또 다른 투자자는 본인의 노하우를 최대한 공유하려고 한다"며 "나는 후자 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투자자들을 열심히 소개해주기도 하고, 공동 연구를 할 사람을 물색하는 등 본인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투자 기업을 키우려고 한다.
이런 성격과 신념을 가진 그라 '최초'라는 타이틀은 낯설기보다는 힘이 됐다. '의사 출신 1호 벤처캐피탈리스트'라는 타이틀 덕에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문 상무는 "정부 정책 회의에 참여하면서 정부 사이드가 민간보다 왜 이렇게 속도가 느린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산이 형성되는 과정, 용역과 프로젝트의 진행, 정책의 흐름 등을 이해하는 것이 투자자 입장에서 큰 기회였다"라며 "헬스케어와 바이오산업은 규제의 영역이기 때문에 더더욱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과 정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헬스케어 산업의 발전을 돕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을 돕는 게 나의 보람이고 부끄럽지 않게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오나 헬스케어가 어떻게 성장을 할 수 있을지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정부 기관이나 정책 입안자들 앞에서도 새로운 산업으로서의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의 미래를 꾸준히 설명하고, 제안하고 있다.
"믿어주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
여성 후배들의 '롤모델'로서 책임감도 크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투자심사역 시장에서 남성의 비중이 큰 편이다. 전체 심사역 중에서 여성 비중이 약 7%라고 해서 '7% 런치클럽'이 만들어질 정도다. 문 상무는 "7% 모임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전체 여성 심사역이 20~30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200명이 넘고 결혼해서 출산까지 한 여성 심사역이 정말 많아졌다"면서 "지금은 전체 심사역 약 2000여명 중에서 여성 심사역 비중이 12~13%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문 상무는 "최근 대형 증권사의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는데, 세계 여성 이사회에도 초대받아서 뛰어난 여성 리더를 많이 만났다"라며 "그 후 젊은 여성들이 '롤모델'이 돼 달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환자를 살리고, 헬스케어 산업만 키운 건 아니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둔 '워킹맘'이기도 하다. 문 상무는 "원래 애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다 보니 애를 낳는 것에 딱히 어려움은 없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의사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또 세 아이의 엄마로서 그는 "무엇보다 믿어주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라고 말했다.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는 누구인가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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