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적 대치 별개…민간 중요한 이유
"방북 신청 거절돼도 상봉 노력 계속할 것"
최근 통일부에 방북을 신청한 류재복 남북이산가족협회장은 정부를 향해 '민간교류 재개'를 지원해 달라고 촉구했다. 강경한 대북 기조로 당국 간의 대화가 어려우니 민간의 영역에서라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다.
류 회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갈수록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이산가족이 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며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민간교류를 재개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지난해 3월 제5대 남북이산가족협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다른 가치로 재단할 수 없는 혈육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안보를 위해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고 북한의 무력도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건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로서 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지금처럼 정치·군사적으로 남과 북이 대치할지라도 혈육을 끊어놓은 비극은 예외적으로 인도적인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류 회장이 '민간교류'를 강조한 배경에는 북한에 닿을 수 있는 인적 자원들을 총동원하겠다는 구상이 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9년 이산가족 103명의 생사 확인을 지원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남북 양측에서 주고받은 문서들을 꺼내 보였다. 류 회장은 과거 한중 수교 이후 동북 3성을 오가며 중국 서커스단의 한국 공연을 중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중국 인사들은 물론 현지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먼저 접촉을 시도해온 북측과도 여러 인연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방북 신청도 그의 인맥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5월 통일부에 낸 '남북 이산가족 생사 확인 및 상봉 사업계획'에 대해 별다른 답을 받지 못해 직접 움직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해외 전직 외교관 등을 통해 북측에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사업 추진' 의사를 타진했고, 답변으로 초청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발신처가 통일부 파악 기관이 아니라서 난항이 예상된다"면서도 "정부의 결정을 따르겠지만, 상봉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협회로 많은 이산가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을 해온다"며 "중국을 통해 북녘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만나기를 고대하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국경을 봉쇄 중인 북한도 곧 빗장을 풀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민간교류를 위한 준비를 미리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재 이산가족법에 따라 생사를 확인할 경우 300만원, 상봉 성사 시 600만원의 지원금이 지급되듯이, 남북교류협력기금 등을 활용해 정부가 민간교류를 지원해주길 바라고 있다.
류 회장은 "북측 당국 및 적십자사와의 협력을 통해 남북·북미 대치 상황과는 무관한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생사 확인, 서신 교환, 나아가 상봉을 추진하고자 한다"며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목표 아래 김정은이 호응해 나올 수 있을 만한 실리적인 제안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지원해준다면 북중 접경 지역인 연변의 두만강호텔이나 만경봉호 선상에서 상봉을 주선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남북이산가족협회는 상반기 중 이산가족과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고향 소식을 비롯해 공유 가능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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