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원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특사'를 맡았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같은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 전 국정원장은 26일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김정은은 중국을 굉장히 불신하고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원하고 있다, 이 말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한테 하신 말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똑같다. 당시 제가 옆에서 들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는 한반도 통일이 되더라도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해야 됩니다'라고 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굉장히 불신했다"며 "특히 중국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높다"고 했다.
박 전 국정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면 왜 그렇게 입에 미군 철수를 달고 삽니까?' 그랬더니 김 위원장이 씩 웃으면서 '국내 정치용입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중국 불신'은 오래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전 국정원장은 "이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6.15 정상회담 후 두 달 있다가 제가 8.15 때 언론사 사장, 올라갈 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다시 한번 물어봐라,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다'라고 해서 제가 김정일 위원장한테 물어봤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 했다.
이는 '유훈 정치'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박 전 국정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김일성 주석이 내려준 유훈을 김정일도, 김정은도 이행하고 있다. 김정일이 (했던) 아주 인상적인 얘기는 '김일성 주석이 두 가지 유훈을 줬는데 첫째도 둘째도 미국이다. 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해서 체제보장을 받아라. 두 번째도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를 통해서 경제발전을 해라' (였다)"며 "이런 것을 보면 아직도 김 총비서의 모든 정책이 김일성·김정일로부터 받은 유훈을 집행하고 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다"고 했다.
중국을 불신하고 미국을 신뢰하는 이유는 중국의 '영토 야욕' 때문이다. 박 전 국정원장은 "김정일이 그런 얘기를 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우리 이웃국가로서 우리나라 국토를 병탄해서 항상 우리 한국을 가져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지리적으로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남의 나라를 침범해서 영토를 가지려고 한 그런 역사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했다"며 "중국, 러시아, 일본을 불신하고, 이 3국은 항상 우리 한반도 영토를 호시탐탐 병탄하려고 기회를 보고 있다는 그런 불신감을 강하게 드러냈다"고 전했다.
박 전 국정원장은 폼페이오 전 장관이 낸 책의 내용이 '상당히 정확하다'며 과거 그와 대화를 나눴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제가 폼페이오 장관을 국정원장 때 만났다. 만나서 '폼페이오 당신이 김정은을 제일 오랫동안 서방세계에서 만나서 얘기해 봤고, 내가 김정일을 가장 오랫동안 얘기해 본 사람인데 그 부자 간의 성격을 한번 비교해 보자'라고 해서 토론을 해 보니까 똑같더라"고 했다.
또 폼페이오의 자서전에는 2019년 북미정상회담에서 김 총비서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참석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도 담겼다. 박 전 위원장은 "항상 북한이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며 "북한의 핵 문제는 남북 문제도 아니고 북중 간의 문제도 아닌 북미 간의 문제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 직거래를 하려고 하지 한국을 통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게 누군가, 문재인 대통령 아닌가"라며 "(북한의 태도는)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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