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생산, '예술vs기술' 뜨거운 논쟁…예술이란 무엇인가, 근본적 물음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생성한 그림이 인간의 작품을 제치고 미국 미술대회 1위를 차지하면서 예술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인간의 전유물로 여겼던 영역을 AI가 파고든 것에 관한 당혹감과 호기심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는 디지털 아트 부문 우승작으로 제이슨 M.앨런(39)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선정했다. 게임기획자인 앨런은 수상 후 디스코드를 통해 “AI가 이겼고, 인간은 패배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앨런은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우승작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AI프로그램 미드저니(Midjourney)를 이용해 제작했다고 과정을 전했다. 텍스트 문구를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이미지를 생성하는 이 프로그램으로 작품 세 점을 만들어 제출했다. 그중 한 작품이 우승을 차지했다.
앨런은 “작품 제출 시 ‘미드저니를 거친 제이슨 M. 앨런’이라고 사용 사실을 명시했기 때문에 출처를 속인 적이 없으며 어떤 규정도 어기지 않고 우승했다”고 설명했다.
대회 규정 역시 창작과정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이미지 편집을 허용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주최 측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회를 주최한 콜로라도 농무부는 “심사위원들이 미드저니가 AI란 사실을 몰랐다”면서도 “알았더라도 이 작품이 우승했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다양한 예술 분야의 AI기술이 날로 정교해지면서 훌륭한 창작 도구라는 옹호 입장과 윤리적 문제를 우려하는 반대 입장 간 대립도 첨예해지는 모양새다.
2019년 미국 비영리 AI 연구기관 오픈AI는 자신들이 개발한 AI시스템 ‘GPT-2’를 고심 끝에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개발된 GPT-2는 80만개의 인터넷 페이지를 검색하고 15억개의 단어를 학습해 문장을 논리적 순서에 맞게 배치하고, 어떤 장르의 글도 다양하게 소화하는 기능을 자랑했다.
단어 또는 문장을 입력하면 스스로 글쓰기를 하는 GPT-2는 학생들의 과제와 연설문 등 다양한 활용 분야에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핵물질을 실은 기차가 미국 신시내티에서 도난당했으며 기차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작성한 GPT-2 기능을 확인한 연구진은 논의 끝에 시스템 폐기를 결정했다. 오픈AI 관계자는 “GPT-2를 악용한 논리적이고 완벽한 가짜뉴스로 야기되는 혼란과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시스템 폐기보다 크다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콜로라도 미술대회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온라인 아트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AI가 생성한 예술작품 게재 금지 움직임이 관측됐다. 미국의 콘텐츠 사이트 뉴즈라운즈는 AI로 생성한 작품 게재를 금지하면서 “사람이 만든 예술에 집중하고 (이 공간이) AI 생성 이미지로 넘쳐나지 않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창작물 커뮤니티 사이트인 퍼어피니티 역시 AI 이미지 프로그램이 기존 작가들의 작품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지적하며 “우리는 아티스트와 그들의 콘텐츠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AI 생성 콘텐츠를 우리 사이트에서 허용하는 것이 커뮤니티에 최선의 이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미술계에서는 순수 창작물과 AI 생성 이미지에 대한 보다 정교한 분류와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은 “기본적으로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삶과 경험적 요인이 가장 중요한 창조적 근원이고, 작품은 예술가와 그 예술가가 살았던 시대적 환경,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관장은 “예술가는 순간적인 영감과 감정이 중요한데 이는 AI 작업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AI 생성 작품은 예술적 범주가 아닌 또 하나의 다른 영역으로 구분돼야 한다”는 견해를 전했다.
기술 발전과 시대적 변화에 따라 AI는 점점 더 진화해 예술의 영역으로 침투하는 상황에서 AI 작업을 예술 영역에서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는 인문, 사회, 예술, 과학 등 넓은 분야의 전문가 논의를 통해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관장은 “예술의 공적 영역에 AI 생성 작품이 어떠한 거름망 없이 들어온 콜로라도 미술대회 사례는 이 같은 다양한 논의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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