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꼭꼭 숨은 여행지-진한 태기왕 전설따라 가는 병지방계곡, 어답산, 태기산 여정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된 첫 주말, 유명 관광지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관광버스들도 여행객을 싣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른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만리는 꼭꼭 숨어있는 곳을 찾아 가볼까 합니다. 강원도 횡성입니다. 횡성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진한(辰韓) 마지막왕인 태기왕의 전설이 스며있는 어답산과 병지방리계곡(병지방계곡)입니다. 연둣빛 이파리를 달고 반짝이는 길은 화려한 봄날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답산의 산 그림자와 알록달록 봄꽃들을 오롯이 받아내는 계곡도 봄 풍경에 썩 잘 어울립니다. 또 있습니다. 6번국도 양두구미재에서 시작하는 태기산 트레킹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4km의 짧은 길이지만 걷는 내내 백두대간의 첩첩 산들이 가슴을 파고 들어옵니다. 산을 품고 나타나는 운해(雲海)라도 만난다면 천상의 모습이 따로 없습니다. 이뿐인가요. 길 곳곳에는 구슬붕이, 현호색, 양지꽃, 제비꽃, 각시붓꽃 등 야생화들도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한우의 고장으로 알려진 횡성에는 진한의 마지막 왕이었던 태기왕의 전설을 유래로 한 곳이 많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태기왕에 관한 전설이 서린 병지방계곡으로 간다. 산디계곡이라고도 부른다. 어답산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산세 깊은 골이다. 병지방(兵之方)이라는 이름은 박혁거세에 쫓기던 태기왕의 수하 병졸들이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나왔다. 갑천(甲川)이라는 또 다른 지명은 태기왕이 피 묻은 갑옷을 씻었다는 구전에서 유래했다.
병지방계곡은 횡성에서도 가장 깊숙이 들어간 오지다. 횡성읍에서 갑천을 따라 오르면 대관대천이라는 시원한 계곡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횡성댐 입구를 지나 조금만 가면 왼편으로 병지방계곡과 어답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드라이브가 시작된다.
병지방계곡 입구를 지나 어답산관광지, 병지방2리, 횡성청소년수련원, 병지방1리까지 총10㎞의 계곡길이다. 어답산, 태의산, 발교산 등 고산준령에 둘러싸여 있는 계곡은 물이 맑고 수량도 적당하다. 가뭄에도 마르는 법이 없다고 알려져있다.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바라보는것만으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병지방로에 들어서자 맑은 계곡물소리와 신록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길손을 맞는다. 한 굽이 한 굽이 돌때마다 숲은 깊어지고 오지의 풍경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계곡 일대는 산벚나무, 참나무, 개복숭아나무 등 수목이 울창하다. 특히 선녀탕 주위는 갖가지 기암괴석과 들꽃이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주위에 가락골, 고든골, 샘골, 주춧골 등 이름도 이쁜 작은 지류들이 흐른다. 강자갈을 적시며 흐르는 물소리와 숲을 옮겨가며 우는 새소리 등 화려하진 않아도 은근하게 정감이 간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갈 수 있는 계곡이라 그런지 10여km를 달리는 내내 만나는 차량은 드물다. 호젓한 분위기에서 느림의 미학을 맘껏 즐길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어답산 산행도 해볼 만 하다. 횡성온천 주변에 주차하고 출발해 선바위, 어답산 장송과 낙수대, 정상을 거쳐 삼거리로 내려오는 코스는 총 8km에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정상을 넘어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등산로는 어느 명산 못지않게 아름답다.
병지방계곡은 외부와의 접근이 쉽지 않아 체류형 여행지로 어울린다. 그래서일까.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캠핑장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병지방오토캠핑장과 선바위캠핑장이다. 편의시설은 물론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있어 가족단위 캠핑족들에게 인기다.
병지방1리와 캠핑장을 지나면 계곡은 점점 깊어지기 시작한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절정으로 향하는 연둣빛 봄풍경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병지방계곡을 나와 횡성호를 지나 태기산(1261m)으로 간다. 횡성에서 가장 높은 태기산 역시 태기왕의 이름을 땄다. 횡성 둔내면과 평창 봉평면을 가르는 산줄기다. 신라군에게 쫓기던 태기왕이 이곳에서 태기산성을 쌓고 신라에 항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태기산에 오르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6번국도 양구두미재(980m)까지 차로 이동하는 것이다. 둔내와 면온 사이 고갯길 정상이다. 병지방계곡에서 차료 30여분 거리다. 바짝 붙어 재촉하는 차도 없어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양두구미재에서 태기산 정상까지는 약 4km. 표고 차가 크지 않아 걸어도 크게 힘들지 않다. 도로는 시멘트 포장과 비포장이 반반이다.
태기산 전망대 방면으로 가파르게 펼쳐진 길을 따라 30여분 오르면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능선이다. 좌우로 펼쳐지는 전망도 그만이지만, 대형 바람개비가 돌아가며 내는 쉬익쉬익 바람소리가 온몸으로 전달된다. 가슴속이 뻥 뚫린다.
여기서 30여분을 산보하듯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면 태기분교다. 1968년 6월 10일 개교해 1976년 폐교되기까지 경력은 8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5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학교터를 간직하며 학생 대신 추억여행을 떠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산 정상에 위치해 ‘하늘 아래 첫 학교’라고 불린 태기분교는 현재 생태탐방로를 겸한 나들이코스로 탈바꿈했다.
군부대 아래 마련된 정상 전망대에서 서면 백두대간의 첩첩 산들이 이어지는 장쾌한 풍경이 펼쳐진다. 평창의 봉평일대는 물론이고 횡성 둔내 너머로 산맥 줄기가 이어진다. 사방에 가릴것이 없어 장대한 산맥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과 마주한다. 기온차가 큰 봄, 가을에는 산을 품고 나타나는 운해(雲海)까지 더해지면 천상의 모습이 따로 없다.
전망대는 이미 사진가들 사이에는 꽤나 알려진 명소다. 변화무쌍한 풍광이 사진 찍기의 묘미를 더해 준다. 전망대 주변은 다양한 꽃이 천상화원을 뽐내고, 겨울이면 눈으로 만들어지는 은빛세계가 펼쳐진다.
태기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운봉천과 만나 횡성을 대표하는 섬강을 이룬다. 갑천면 횡성호에서 잠시 큰물을 이뤘던 섬강은 횡성읍과 간현유원지를 거쳐 여주에서 여정을 끝내고 남한강에 합류한다.
큰물을 가둔 횡성호는 섬강의 고운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호수속으로 부드럽게 흘러드는 산자락들이 겹쳐져 물 속에 첩첩의 산그림자를 그린다. 이런 풍경을 보며 걷는 횡성호수길은 인기 있는 힐링트레킹코스로 이름났다.
횡성=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영동고속도로 새말IC나 중앙고속도로 횡성IC를 나와 횡성읍과 횡성댐 입구를 지나 조금만 가면 병지방계곡과 어답산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먹거리=한우가 첫손으로 꼽힌다. 횡성본점, 우천점, 새말점, 둔내점 등을 거느린 횡성축협한우프라자가 믿을만한하다. 종합운동장부근에 있는 해장국집은 지역 주민들의 단골집이다. 안흥찐빵은 면사무소앞 안흥찐빵과 심순녀 안흥찐빵이 손꼽힌다.
△볼거리=숲체원, 청태산자연휴양림, 자작나무미술관, 횡성호수길, 풍수원 성당, 횡성루지체험장, 안흥찐빵마을, 섬강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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