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가 있어야만 권리 보장 받나"
"남성·여성 구별하는 제도적 이분법으로는 남녀 함께 행복해질 수 없어"
[아시아경제 강우석 인턴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잔디(가명)씨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김씨는 15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금 여성가족부 존폐를 놓고 시끄럽다. 없애냐 마느냐 하는 표피적 문제보다 난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꼭 정부 조직에 '여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가 있어야만 권리를 보장받는 형식적인 양성평등만이 필요한 것이냐는 물음 말이다"라며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난 이보다는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바란다고 답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여가부가 굳건히 존재했던 지난 5년의 더불어민주당 정권에서 벌어졌던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라며 "모두가 기억하듯 민주당은 자기 당 소속 권력자들의 잇따른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들을 피해자라 부르지조차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격한 국민의 분노가 차오르고, 야당은 이를 반영해 이번 대선 국면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을 내놓았다"며 "지난 5년 동안 너무도 명백한 잘못을 하고도 제대로 바로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더니 폐지 공약이 나오고 나서야 '여성과 남성을 편 가르고, 혐오적인 선동'이라고 여가부 안팎, 여성계가 흥분하고 적잖은 2030 여성들이 여기에 동조한다"고 연이어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나는 여가부 폐지 공약의 이행 여부와 무관하게 공약을 내건 것만으로도 국민의 삶을 직접 변화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지난 민주당 정부와는 달리 2차 피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이뤄졌으면 한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의 2차 가해는 더욱 엄격한 기준을 막아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소모적 싸움을 피해자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규정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교육 영상을 배포해 논란을 일으켰다. 새 정부는 이런 식의 성별 갈등을 조장하는 대신 '위계'와 '모호한 공사 구분'이 잠재적 가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관련 정책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김씨는 "여성에게 우리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서도 "운동장이 기울어졌다고 한쪽에만 유리한 규칙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그 기울어진 대지 위에 콘크리트를 붓고 운동장 자체를 평지로 만드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제도적 이분법으로는 남녀가 함께 행복해질 수 없다. 지난 대선 결과인 48.5와 47.8이라는 숫자를 '우리 사회의 끔찍한 분열 양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마중물'로 바라보고 싶다"며 "남녀의 구별이 아닌 생애주기별로 직면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새 정부는 국민과 활발한 소통을 하며 해결해나갔으면 한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정과 상식의 그 날을 기대한다"고 적었다.
김씨는 기고문에서 차별과 맞선 미국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 루스 긴즈버그를 그린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에서 긴즈버그는 가족의 보육자 자격을 여성으로 지정한 조세법을 근거로 노모를 부양한 독신 남성에게 간병인 세금공제 혜택을 주지 않았던 조세 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이 나라를 바꾸어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느 법정의 허락 없이도 변화는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이 나라가 바뀔 권리를 지켜달라는 말입니다.… 이런 법은 여성을 돕기는커녕 새장에 가두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강우석 인턴기자 beedolll9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