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조사역·과장 16명 퇴직
한은 "재택근무 시 본인 성과 엑셀에 작성"…2030 "개인 정보 감시인가"
한은 12월 말 '중장기 경영 인사 혁신방안' 발표
[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우리 한국은행에 똑똑한 사람들은 많은데 자원의 낭비다. 똑똑한 사람은 나가는 것이 맞다."
1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다. 이 블라인드는 한은 직원만 가입할 수 있다. 높은 임금과 위상으로 '신의 직장'이라 불렸던 것은 오래전 이야기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입행 5년 차를 맞은 한 조사역은 최근 국내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나이스평가정보로 이직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월 현재 기준 5급 조사역과 4급 과장 퇴직자는 16명이다. 지난해에도 이미 14명이 사표를 쓰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지난 5월 5년 차 조사역이 자산운용사로 이직한 데 이어 퇴사 러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늬만 혁신, 안정 추구 조직 문화, 낮은 임금 인상률 등을 이유로 한은의 미래가 없다고 강조한다.
블라인드 게시판에는 '혁신에 대한 착각', '이 회사의 가장 큰 문제는 조직경영의 아마추어리즘입니다' 등의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해당 내용들은 2000명 가까이 보고, 댓글이 달리는 등의 반응이 뜨겁다.
작성자는 "한정된 업무에 수많은 사람이 목을 메고 달려드니 자연히 업무는 쪼개진다"며 "업무를 쪼개다 못해 일을 위한 일을 계속 만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작성자 역시 "현재 시장에서나 관(官)에서나 공통적으로 한은을 보는 시각이 대체 '한은이 하는 일이 뭐야'다"라며 "우리끼리 백날 연필 들고 자간 보면서 고쳐봐야 외부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며 한탄 섞인 목소리들이 흘러나온다.
2030 "개인별로 성과 작성이라니, 이것은 빅브라더인가"
이같은 퇴사 러시는 한은의 '조직 개편'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지난 9일 조직혁신추진위원회 4차 회의 결과를 직원들에게 배포한 후 '상시 평가체계 도입'을 시행했다. 해당 제도는 팀원들이 재택근무를 할 때 엑셀에 본인의 성과를 작성하고, 팀장은 이를 피드백 하는 식이다. 한은은 추가 논의 후 상시 평가 제도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젊은 직원들은 업무의 권한과 복지는 제자리인 상황에서 책임만 강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한 조사역은 "업무 효율이라는 큰 방향을 갖고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당장 개혁에 급급하다 보니 주중 시스템보다도 구시대적인 엑셀 성과 작성이라는 제도가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조사역은 "개인별로 성과를 작성하라고 한다"며 "이것은 빅브라더(개인 정보 감시)인가"라고 덧붙였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젊은 직원의 줄퇴사는 한은의 비전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조사역과 초임 과장은 업무에 의견조차 싣기 어렵다"며 "조직의 업무 확장, 위상 제고는 보수 개선에 대한 노력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본인이 업무 관련 의견을 적극 개진할 수 없으며, 보고서 역시 내용보다 양식 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업무의 비효율성만 높아진다는 것이다.
민간은 평가 제도 축소하는데, 한은은 오히려 신설
낮은 임금 인상률도 문제다. 최근 5년간 한은의 임금 인상률을 보면 2019년 0.8%, 지난해 2.7%를 기록한 후 올해 0.7%였다. 연봉이 산업은행 등과 많게는 20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한은은 올해 말까지 중장기 경영 인사 혁신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앞서 글로벌 인사 컨설팅 업체인 머서코리아는 구성원의 보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위한 평가 상여금 차등 지급 방안, 상시 평가, 디지털 화폐 등 10개 수석 자리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한은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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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혁신 방안은 민간의 조직 혁신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오는 25일 발표할 인사제도의 목적은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데 있다"며 "실익은 없는데 임직원들이 신경을 써야 하는 평가 제도 등은 일부 없애는 것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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