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우리나라에서는 ‘치느님’이라고까지 치켜세우는 국민음식인 치킨은 원래 19세기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흑인 노예들이 먹던 ‘프라이드(Fried) 치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백인 농장주들이 오븐에 구운 ‘로스트(Roast) 치킨’을 만드는 과정에서 버리는 닭발이나 목부분을 주워 뼈째 씹어먹기 위해 튀겨낸, 이른바 흑인노예들의 소울푸드가 오늘날의 치킨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지아주의 주도인 애틀랜타는 대륙횡단철도 등 미국 전역으로 뻗어가는 동남부 철도의 중심지로 면화농장 뿐만 아니라 미국 낙농업계의 핵심지역으로 성장하던 도시였다. 미국 동부 대도시로 공급하기 위한 돼지와 닭 등 육가공업체들이 뒤따라 많이 들어섰고, 버려지는 동물의 기름 또한 많다보니 프라이드 치킨, 메기튀김 등 주로 튀김음식이 다수를 이루는 흑인 소울푸드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국 남북전쟁기를 그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의 고향이자 주된 배경이 애틀랜타로 설정된 이유다. 사실 프라이드 치킨은 흑인들 뿐만 아니라 오하라 가문의 뿌리로 등장하는 아일랜드계 백인들에게도 소중한 음식으로 알려져있다. 대기근을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이들을 구명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1853년, 아일랜드 감자 대흉작으로 아일랜드 인구가 80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줄어든 끔찍한 기아가 발생하면서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은 맨몸으로 대서양을 건너와 조지아주까지 흘러들어왔다. 이 아일랜드계 백인들은 이 지역의 하층민을 구성하게 됐고, 역시 프라이드 치킨 등 튀김음식을 통해 목숨을 구명했다고 한다. 이것이 켄터키주까지 흘러들어가 프랜차이즈화된 것이 오늘날의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으로 알려져있다.
치킨은 아시아계 사람들의 소울푸드이기도 하다. 치킨 발상지인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코리안 스타일 치킨’이 2000년대부터 한류열풍을 타고 역수입되면서 특별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부터 대구에 주둔한 미 8군 부대에서 시작된 한국의 치킨문화는 1980~90년대를 거치며 성장했고, 한국교민들과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유행해 이제는 미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으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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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역사 하나만 봐도 조지아주를 비롯한 미국 남부지역이 남북전쟁 전후로 다양한 인종들의 이민자 문화가 서로 뒤섞이면서 발전해온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최근 코로나19 확산세와 함께 퍼진 미국 내 중국책임론이 아시아계에 대한 비이성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150년 이상 켜켜이 쌓여온 이 지역의 이민자 문화 역사가 코로나19와 함께 인종차별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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