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최초로 2개의 노벨상을 받고, 모녀가 동시에 노벨상을 받은 뛰어난 과학자이자 프랑스와 폴란드 두 나라의 과학영웅으로 불리는 '마리 퀴리' 박사가 7일, 탄생 150주년을 맞았다. 오는 12일부터 개최되는 제9차 세계동위원소대회(ICI)에서 마리 퀴리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방사능 연구의 선두자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퀴리 박사는 보통 '퀴리부인'이라 불리며 프랑스인으로 알려져있다. 실제 퀴리 박사는 남편 피에르 박사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예전엔 500프랑 지폐 모델로도 나올 정도로 프랑스의 과학영웅이지만 원래 그녀의 고향은 폴란드였다. 고국을 향한 퀴리 박사의 그리움은 그녀가 최초로 발견한 방사선 물질 '폴로늄(Polonium)'의 이름에도 담겨있다. 고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원소 이름을 붙였던 것.
![[마리퀴리 150돌]①퀴리는 왜 최초의 방사성 원소에 '폴로늄'이란 이름을 붙였을까?](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7110615561057808_3.jpg)
하지만 그녀가 두 차례 노벨상을 받은 1903년과 1911년, 모두 폴란드란 나라는 지구상에 없던 시절이었다. 폴란드는 유럽이 프랑스 대혁명에 휩싸여있던 1795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3국에 의해 분할돼 완전히 사라졌다. 퀴리 박사가 태어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당시 러시아제국 수중에 있었다. 물리학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러시아령 폴란드의 작은 소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Marie Sklodowska)는 어린시절부터 멸망한 조국인 폴란드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듣고 자랐다고 알려져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폴란드어로 쓴 학생의 답안지를 정답으로 처리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교사 자리를 박탈당했지만 러시아를 쓰는 것 자체를 혐오했다. 당시 러시아제국 치하의 폴란드는 수차에 걸친 민중봉기가 모두 실패한 후, 러시아의 식민지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강압적 분위기에 당시 러시아는 여성의 대학진학이 아예 금지된 나라였다. 러시아 치하의 바르샤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없었던 그녀는 유학자금을 모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던 것.
역시 식민치하를 겪었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 퀴리 박사가 유년시절 겪은 나라잃은 설움은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머리가 비상하고 성적이 우수했던 마리아는 러시아 장학사가 찾아와 러시아어와 러시아의 위인들, 통치자에 대해 질문하자 유창하게 대답하면서도 커다란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훗날 마리 퀴리의 둘째 딸인 이브 퀴리가 쓴 전기에도 언급됐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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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 속에서, 그녀는 남편과 함께 발견한 새로운 방사성 원소의 이름에 '폴로늄'이란 이름을 붙였던 것. 당시엔 영국과 함께 세계 열강이었던 러시아제국이 이 호칭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한때 정치적이란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한 이름이었지만 1차 대전이 끝나고 그녀의 조국인 폴란드가 러시아로부터 해방되면서 폴로늄은 폴란드인들의 자긍심이 됐다.
이후 정작 2000년대 들어서 폴로늄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였다. 지난 2006년, 구 소련의 연방국가보안국(KGB) 요원인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독살사건에 폴로늄-210이 쓰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폴로늄은 독극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 평소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던 리트비넨코는 옛 KGB 동료와 만나 홍차를 마신 뒤 원인불명의 병으로 23일만에 사망했다. 이보다 앞서 2004년에는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프랑스에서 돌연 건강이 악화돼 사망했는데 당시 프랑스 검찰 수사결과, 아라파트의 소지품에서도 폴로늄-210이 검출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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