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영향 미치는 주요 변수… 2002년 히딩크 감독, ‘잔디 특별 관리’ 지시하기도
31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이란과 0대 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가 다음 경기로 미뤄지게 됐다. 하지만 결과보다 당일 '최악의 잔디 상태'가 도마에 오르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31일 대표팀의 핵심 전력인 공격수 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은 경기 후 "많은 찬스를 만들지 못했던 것은 분명 아쉽지만 경기력보다도 잔디가 정말 좋지 않았다"며 "이런 말까지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잔디 상태에 화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잘하길 바란다는 건 욕심 같지만 축구를 아는 사람들이면 잔디 상태의 중요성에 대해 알 것"이라고 했다.
신태용 감독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잔디가 좋은 곳에서 경기했다면 좀 더 좋은 경기력을 펼쳤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울리 슈틸리케 전 대표팀 감독은 지난 2015년 3월 뉴질랜드전에서 1대 0으로 승리를 거둔 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가 나빴다. 이런 상태가 몇 차례 반복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기성용(29. 스완지시티) 또한 지난 3월 중국과의 원정 경기 당시 "(중국의) 경기장은 아직 안 가봤지만, 상태는 좋다고 들었다. 어쨌든 서울월드컵경기장보다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는 왜 '최악'이었을까.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은 이번 이란전을 앞두고 잔디 상태를 끌어올리고자 약 7000만 원의 거금을 들여 그라운드의 4분의 1가량의 잔디를 교체했다. 잔디 온도를 낮추려고 대형 송풍기 8대를 24시간 가동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어진 무더위와 최근 잦았던 폭우, 주요 아티스트 콘서트로 인한 잦은 대관, 관리 소홀 등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선수들은 푹푹 파이는 잔디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패스하는 데 애를 먹어야만 했다.
축구 경기에서 잔디의 중요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일화에서 알 수 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끈 그는 잔디 상태에 대한 중요성을 각별히 강조하고 누구보다 이를 경기에 적극 활용했다. 우선 잔디 길이를 국제축구연맹이 정한 25~30㎜보다 훨씬 짧은 22㎜로 자르게 하고 경기가 펼쳐지기 전에는 늘 잔디에 물을 뿌려 달라고 축구협회에 요구했다. 잔디를 짧게 하고 습도를 높이면 마찰과 저항이 크게 줄어 볼 스피드가 빨라지게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어 훈련장과 실제 경기장의 잔디 상태를 최대한 같게 해 선수들이 잔디 상태에 겪는 어려움을 최소화했다.
2002년 월드컵 때 포르투갈전을 앞두고는 상대팀의 정교한 패스를 거친 잔디로 방해하려는 의도로 잔디에 물을 뿌리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는 물 뿌리는 시간을 1시간 늦춰 잔디가 최대한 촉촉해지도록 한 후 공이 빨리 굴러가게 해 스피드가 주 무기였던 한국 대표팀 플레이를 유리하게 가져가기도 했다.
축구계 관계자는 "상대팀인 이란도 동일한 조건에서 경기를 펼쳤지만 '한국 축구의 심장'이라 불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6만 관중 앞에서 늘 지적된 잔디 상태를 보완하지 못한 채 준비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아시아경제 티잼 최희영 기자 nv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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