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간판 쓰러져 다치고…전선에 걸려 넘어지기도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 김모(32)씨는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골목길에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경사진 보행로 위에 세워둔 한 가게의 입간판이 김씨의 발 위로 넘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입간판이 이렇게 위험한 줄 몰랐는데 사고를 당하고 나니 흉기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도심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간판이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김씨를 다치게 한 건 알파벳 'A' 모양으로 생긴 접이식 철제 입간판이다. 카페나 음식점 앞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크기별 무게는 6~11㎏ 정도로 그리 위험해 보이지도 않아 다들 이를 피하지 않는다. 김씨는 "성인인데도 이렇게 크게 다쳤는데, 어린아이들이 지나가다 사고가 발생했다면 더 큰 피해가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명소로 알려져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많은 편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입간판은 바람이 불면 쓰러지면서 보행자를 치기도 한다.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입간판 아래 부분에 있는 플라스틱 통에 물을 넣어야 하지만, 이동이 편하도록 대부분 이를 비워두고 있다. 입간판을 고정하려고 무거운 돌을 올려놓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오히려 안전사고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직장인 정모(33)씨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입간판이 멀리 날아가자 가게 주인이 줍기 위해 뛰어가는 것도 봤다"며 "무심코 입간판 옆을 지나가다가도 언제 쓰러질지 몰라 가끔 무섭다"고 말했다.
에어라이트(풍선형 입간판)는 전선이 외부로 나와 있어 비가 올 때 감전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평소에도 보행자들이 에어라이트 전선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이 입간판들은 대부분 불법이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나 '서울특별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입간판은 보행자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사유지 벽면 1m 이내에만 설치 가능하다. 보행자 통로에는 절대 설치해선 안 된다. 높이도 1.2m 이하이면서 한쪽 면의 면적은 0.6㎡ 이하여야 한다. 전기나 조명 보조장치를 사용하면 안 된다.
시와 자치구는 불법 입간판 단속을 수시로 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다. 서울에서만 2015년 3만1261건, 지난해 3만239건의 불법 입간판이 적발됐다.
올해도 비슷할 것이란 게 시 측의 설명이다. 적발된 불법 입간판을 수거해도 가게 업주들이 홍보를 위해 또 다른 불법 입간판을 내놓기 때문이다. 김씨를 다치게 한 불법 입간판 또한 사고 이후에도 버젓이 가게 앞에 놓여 있으면서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가게마다 불법 입간판을 안 내놓은 곳이 없다. 24시간 지키고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라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불법 입간판을 줄이고자 과태료를 지금보다 더 올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