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수출 계약을 할 때 수출 경험이 많지 않은 기업들은 상대 바이어가 먼저 제시한 계약조건 내용을 그대로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성자가 자사 입장에서 내용을 작성하기 때문에 수출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문제 조항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측이 보내온 서류에 대해서는 무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전에 꼼꼼히 살펴보고 불리한 조항은 사전 협의를 통한 조율이 필요하다.
특히 수출대금 결재방법과 관련해서 신규 거래이거나 결재 금액이 큰 경우 신용장으로 거래하자는 제안이 심심치 않게 온다. 신용장은 은행이 대금 지급을 보증하기 때문에 무역 거래에 있어 가장 안전한 결재 조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용장으로 대금지급을 보증받기 위해서는 신용장에 명시된 모든 서류가 완벽하게 준비돼야 하며, 만약 한 가지 서류라도 하자가 있으면 대금지급을 거절하거나 혹은 신용장 내용 수정을 위해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 또한 바이어의 동의 과정이 필요해 수출자에게 불리한 협상을 해야 한다.
화학약품 제조업체인 P사의 사례는 문제가 된 신용장을 꼼꼼히 검토해 자칫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성공적인 수출로 전환시킨 사례다. 이 회사는 2016년 말 설립돼 짧은 기간에 중국 시장에 4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신시장 개척 활동을 펼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7만5000달러 상당의 초도 오더 물량 수주에 성공했다. P사는 그 동안의 수출거래에서는 전신환(TT)으로 대금을 받아왔는데, 이번 사우디 바이어는 신용장 개설을 희망한다며 신용장 개설 신청서 초안을 보내왔다. 필자가 신용장을 살펴 본 결과 이 내용대로라면 선적이 될 경우 서류상 문제로 인해 수출 대금 회수가 불가한 '지급 불가(UNPAID)' 상황이 되거나 신용장 내용 수정에 과도한 수수료가 발생되는 심각한 상황이 예상됐다.
신용장상 대금 수령자(Beneficiary)란에 바이어의 중간 거래처와 P사 2개사가 명시돼 있는데 이를 반드시 P사로만 표기해야 하며, 대금지급(Usance) 기한도 명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거래 과정에 발생되는 모든 은행 수수료 즉 신용장 개설 비용, 추심 수수료, 송금 수수료, 신용장 내용 수정 수수료 등을 P사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 비용은 바이어와 분담하거나 신용장 개설자가 부담하도록 했다. 은행에 수출대금 요청시 첨부하는 서류에 선하증권, 인보이스, 패킹리스트, 원산지 증명서 등 필수서류만 명시하도록 했다. 명시된 서류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대금 지급을 거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P사가 이 같은 내용의 수정하자 사우디 바이어는 기존 서류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P사는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조항별로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래 조건을 전신환 100% 선지급 조건으로 변경해 줄 것을 요구했고 사우디 바이어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 같은 노력 덕붙에 P사는 수출대금 7만5000달러 전액을 선불로 지급받아 안심하고 선적을 할 수 있었다.
조승희 KOTRA 무역투자상담센터 수출전문위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