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국회가 정해진 기간 안에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국민들도 지지가 훨씬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명분이다. '여론'에 기대어 '법대로' 한 것이다. 주무 장관 없이 어떻게 한미 정상회담을 치르겠느냐거나 강 장관이 글로벌하고 당찬 인물이라는 수사는 저 두 마디를 감싼 포장지로 보인다.
아직 밀월기(honeymoon period)라고 판단해서 용기를 냈을 테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장관은 대통령의 비서(secretary)이고 장관이 모인 내각은 사무용 보관함(cabinet)으로 불린다. 대통령의 선호와 지향을 바탕으로 소신껏 뽑아 쓰는 게 사실은 옳다. 혹여 대통령의 인사를 '코드인사'라고 비난한다면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게까지 고려를 해도 문 대통령의 이번 인선은 위험해 보인다. 법대로라는 인식이 특히 그렇다. 법에 앞서서, 법만으로는 안 되는 데서, 또는 법이 끝난 지점에서 정치는 작동하는 것이고 작동 해야만 한다.
인사 검증이나 청문 절차는 이런 지점이다. 크고 작은 법적 하자를 양해하고 이해하면서 정치적인 선을 그어내는 일이다. 야당이 공격하고 반대하는 논리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더라도 '법대로'라는 도구를 함부로 꺼내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여론'도 마냥 단단한 건 아니다. 강 장관을 임명하는 데 찬성한다는 의견이 62.1%로 반대한다는 의견(30.4%)의 두 배를 웃돈다는 결과가 나온 한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한 듯하다. 문제는 질문이다.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보기'에도 틈새가 있다. 1번은 '국정 정상화를 위해 임명을 강행해도 된다'이고 2번은 '여야 협치를 위해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이다. 야당이 반대하면 국정은 비정상으로 흐르게 된다는 맥락이 질문과 1번 보기에 녹아있다. 여론 분석 전문기관 A사의 대표는 "사회과학적 유의도가 떨어질 수 있는 질문과 보기"라면서 "특정 방향으로 유추가 가능한 맥락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는 소통으로 발현한다.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기 전에 국민 앞에 서서, 또는 기자들과 토론함으로써 '왜 강경화여야만 하는가'를 소상하게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여론은 훨씬 더 정교하게 피드백했을 것이다.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고 "남대문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누며 소통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로 다짐한 문 대통령이 아니던가. 참모들과 회의 하면서 한 마디 내놓은 다음 언론을 이용해 이를 전파하는 방식은 직전 정권에서 차고 넘치도록 목격했다.
남은 인선, 특히 법무부 장관 재인선에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치로 '정치'를 하면 좋겠다. 중대하게 여기는 만큼 말이다. 인선 이후 검찰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대(對)국민 담화이든 상대 세력과의 대화이든 좋다. 문 대통령이 '적폐'로 규정한 일부 정치검사들이 쌓은 명분도 '법대로'였다.
법(혹은 제도)만으로 안 된다는 걸 문 대통령은 안다. 그는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공동 집필한 저서 '문재인ㆍ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제도 개혁에 치중한 것'을 검찰개혁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인기(지지율)는 언젠가 빠지고, 인기를 등에 업은 채로 벌이는 속도전에는 한계가 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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