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톱 만한 1제곱인치, 2.54㎠, 0.000195161평의 종이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극했다. 종이편지가 급속하게 자취를 감춘 시대에 때아닌 우표 발행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우표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어서다. '박정희 우표'를 발행할 것이냐를 두고 찬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 발행은 이미 지난해 5월 결정된 상태다.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일사천리로 발행심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뒤늦게 도안을 확정할 단계에 접어들면서 발행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우표가 예정대로 발행돼 유통될 것인가.
16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우정사업본부는 "이달 30일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의 도안을 확정하고, 예정대로 오는 9월15일 60만장을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우표 발행에는 1300만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된다.
박정희 우표는 지난해 4월 구미시의 제안으로 추진됐다. 박종수 구미시 문화관광담당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는 해마다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으며 올해에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더 많은 사람이 생가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관광객들에게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기념품이 필요할 것 같아 고민하다가 기념우표 발행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정본부는 그해 5월 우표발행심의위원회를 열고 참석한 위원 9명의 전원일치로 발행을 결정했다. 심의위는 문화예술계, 학계, 과학계, 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 17명의 위원으로 운영된다.
도안 확정을 앞두고 각계에서 발행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미참여연대, 민주노총 구미지부, 구미기독교청년회 등 시민단체는 지난 14일 공동성명을 내고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계획의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구미시와 경북도가 중심이 돼 추진하는 '박정희 100년 사업'은 이미 지역에서 수많은 반발에 부딪히고 전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됐다"면서 "반발의 주된 이유는 독재자를 미화·우상화하는 사업의 성격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우정본부 내부에서도 우표 발행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우정본부 공무원노동조합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으므로 기념우표 소재로 적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으로 발생할 우정사업의 이미지 훼손과 종사원들의 자존감 상실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며 "이 우표 발행의 즉각 철회를 요구하며, 우정본부의 변화가 없을 시 전면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노조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 세칙'의 관련 규정이다. '정치적·종교적·학술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소재의 경우 기념우표를 발행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우정본부는 난처한 입장이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절차상 문제가 없으므로 발행을 취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심의위는 미래부나 우정본부와는 독립적인 기관이어서 심의위의 결정이 '외풍'에 의해 번복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지적도 했다. 그러면서 심의위원 명단은 공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심의위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편 우정본부는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는 일반적으로 발행해 왔다. 전직 대통령 11명 중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취임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전직 대통령이 태어난 날을 맞아 기념우표를 만든 것은 고 이승만 전 대통령뿐이다. 80번째 생일(1955년)과 81번째 생일(1956년)을 기념한 우표는 재임기간 중 발행됐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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