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카카오톡 '웨이신(위챗)' 무서운 성장
올 1분기 월간 활성 이용자 수 9억3800만명
애플, 중국서 고전하는 원인으로 '웨이신 생태계' 꼽혀
모바일 결제도 1인자 '즈푸바오(알리페이)' 맹추격
[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중국에서의 애플은 '세계 1위' 수식어가 무색하다. 애플의 최근 분기(1~3월) 실적에서 판매가 감소한 지역은 중국뿐이었다. 중국시장 매출은 5개 분기 연속 내리막이다. 같은 기간 다른 주요 국가에서 두 자릿수 매출 성장세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굴욕적인 결과다. 그렇지만 애플한테 중국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자 목표다. 애플의 한 해 글로벌 매출의 4분의 1이 중국에서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때 '중국판 애플'로 불린 샤오미와 후발 주자 화웨이·오포·비보 등 토종 경쟁사에 시장점유율을 내준 것도 모자라 애플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으로 웨이신(微信·위챗)이 꼽힌 것은 의미 있는 대목 같다. 웨이신은 우리가 흔히 '중국판 카카오톡'이라고 표현하는 모바일 메신저 기반의 플랫폼인데 어떻게 애플의 대항마가 됐을까.
미국 경제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애플이 중국에서 고전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웨이신을 지목했다. 시장 조사 기관 오펜하이머의 앤드루 외르크비츠 연구원은 얼마 전 주주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국의 특정 애플리케이션의 독보적인 지배력이 애플을 해치고 있다"면서 "10억명 가까운 이용자를 보유한 웨이신은 중국인에게는 사실상 유비쿼터스(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의 라틴어) 같은 존재"라고 분석했다.
중국에만 유난히 '애플빠(애플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군)'가 적은 이유가 웨이신 때문이라는 게 WSJ의 진단이기도 하다. 단순한 메신저였던 웨이신이 혁신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작은 운영 체제로까지 발전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애플의 iOS 생태계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스마트폰을 바꾸더라도 웨이신 앱만 내려받아 기존의 계정으로 로그인하면 모든 기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별다른 불편함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모바일 결제와 SNS 만나 중국인 일상을 바꾸다= 중국인은 웨이신을 켜면서 눈을 뜨고 웨이신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이신에 등록한 친구와 잡담하고 사업 이야기를 나누며 주요 뉴스를 가장 먼저 접하고 식당 예약을 하며 때론 값비싼 명품을 손쉽게 주문하기도 한다. 중국인뿐 아니라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웨이신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고 입을 모아 호평한다.
웨이신의 지난해 MAU(Monthly Active Users·한 달 동안 서비스를 이용한 순수 이용자) 계정은 8억8900만명으로 한 해 전보다 28%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는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9억3800만명으로 늘었다. 추세대로라면 연내 10억명 돌파가 확실하다. 전 세계 인구 10명 중 7~8명이 웨이신을 애용한다는 얘기다.
웨이신은 어마어마한 유저를 등에 업고 모바일 결제시장 최강자인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를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 결제 플랫폼인 웨이신즈푸(微信支付·위챗페이)를 통해 '골리앗' 즈푸바오의 시장점유율을 야금야금 뺏고 있다. 즈푸바오의 지난해 말 기준 시장점유율은 54%로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웨이신즈푸가 37%를 기록 중이다. 둘의 시장점유율만 90%가 넘는다. 반면 애플페이나 삼성페이는 1%에도 못 미쳐 로컬과 해외 브랜드의 양극화가 극심하다. 특히 애플페이는 애플 스마트폰에서만 쓸 수 있어 이용 자체가 제한적이다.
즈푸바오와 웨이신즈푸는 각각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인 알리바바와 텅쉰(텐센트)이 운영하는 서비스다. 두 기업은 막강한 자금력과 마케팅을 앞세워 중국을 전 세계 1위 모바일 결제시장으로 순식간에 키워냈다.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중국의 모바일 결제액이 미국을 처음으로 제친 건 2015년이다. 지난해 중국 모바일 결제시장 규모는 38조위안(약 6244조원)으로 전년보다 3배 커졌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웨이신의 경우 새로운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며 "텅쉰이 지난 1분기 웨이신으로부터 얻은 광고 매출이 44억위안으로 67% 증가했는데, 이는 텅쉰 온라인 광고 매출의 절반 가까이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단순 온라인 결제 외에도 차량 공유나 음식 배달 서비스 앱 등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중국판 우버'나 '중국판 배달의 민족' 등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모바일 결제가 하나의 문화로 빠르게 정착한 덕분이다. 최근 공유 자전거 열풍으로 공유 경제 산업이 승승장구하는 것 역시 모바일 결제시장이 먼저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디디추싱(滴滴出行)이나 자전거 공유 앱 모바이크·오포를 이용하고 현금 필요 없이 웨이신 혹은 즈푸바오로 '뚝딱' 결제한다. 거의 모든 의식주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한 것이다. 중국 국가정보센터는 디지털 경제가 가속화하면서 중국의 공유 경제가 매년 최대 40%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공유 경제 산업이 2020년에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고 2025년에는 20%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내놨다.
◆기업가치 고공비행…왕좌 점령 속속= 중국 인터넷 기업의 가치는 눈덩이처럼 부풀면서 철옹성 같던 미국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벤처투자사 클라이너 퍼킨스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2017 인터넷 트렌드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인터넷 기업 시가총액 상위 20위 순위에 중국 기업 7곳이 포함됐다. 미국(12곳)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텐센트가 시총 3350억달러로 애플·알파벳·아마존·페이스북에 이어 5위에 올랐고 알리바바(3140억달러)가 6위, 바이두(660억달러)가 10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마이진푸(앤트파이낸셜)·징둥닷컴·디디추싱·샤오미 등도 20위 안에 들었다. 전 세계에서 가치 있는 인터넷 기업 3곳 중 한 곳이 중국 기업이라는 얘기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는 원조 트위터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사용자를 보유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매체로 떠올랐다. 웨이보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지난 1분기 현재 3억4000만명으로 2014년 4월 뉴욕 증시 상장 이후 분기별 최대 증가(2700만명)를 기록했다. 상장 당시 웨이보의 시총은 34억달러로, 트위터(268억달러)에 한참 못 미쳤으나 둘의 시총 순위는 뒤바뀐 지 오래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최신호에서 "중국이 온디맨드(고객 맞춤형) 서비스부터 모바일 결제, 게임, 전자 상거래 등 많은 IT 분야에서 이미 세계를 이끌고 있는데 다음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다"고 전했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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