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진용을 갖추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재벌개혁, 그 중에서도 지배구조개혁의 향배를 놓고 재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주사 전환과 순환출자 해소를 두고 재계에서는 지배구조 개편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이는 방안도 정부여당이 마련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재계로서는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배구조 개혁과 관련 양대 법안인 상법개정안과 중간금융지주사 도입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창과 방패의 역할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주사 전환 물꼬터줄 중간지주사…번번이 폐기
22일 재계에 따르면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은 이전 정부시절부터 공정거래위원회와 현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주도해온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이 지배구조 개혁에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벌저격수였던 장하성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모두 과거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에 찬성의견을 밝힌 바 있어 국회에서 무산된 관련 법 개정안의 논의도 본격화될 필요성에 제기되고 있다.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은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증손회사 지분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 안팎으로 완화해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상임위를 통과했으나 법사위에서 폐기됐고, 19대 국회 들어 2012년 다시 발의됐지만 당시 야당의 반발로 그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 현대차, 롯데, 한화 등은 금융자회사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지 않고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방안과 관련 확정된 것은 없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오랜 기간 해법찾기에 골몰해온 난제다. 난제라는 의미는 현대차그룹이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지주사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장하성 김상조에 공정위도 찬성…지배구조에 효과적 수단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8%를 보유하고, 현대차는 기아차의 33.8%를, 기아차는 다시 현대모비스의 16.9%를 보유하는 방식이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6.96%와 현대차 5.17%를 갖고 있다. 정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있고 현대차 지분도 2.3%밖에 없다. 여러 시나리오가 있지만 현실적인 안은 많지 않다.
현대차그룹이 지주사를 별도로 세운다는 가정을 하게 되면 지주회사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의 지분을 보유해야하고 지주사의 지분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확보해야 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비스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각각 분할하고 3개 투자회사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안은 증권가에서 나왔다. 하지만 현행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하기 때문에 이 역시 쉽지 않다.
중간지주사제도가 도입되면 현대차그룹은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현대차투자증권 등의 금융계열사 지분을 인적분할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지주회사체제로 전환이 가능하다.
-상법개정안, 과도한 의사결정 개입에 지주사전환 어렵게할수도
반면에 현 여당이 추진하는 상법개정안은 지주사 전환을 어렵게하고 재벌 총수의 전횡방지와 견제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기업의 경영권이 무력화되고 투기세력에 기업을 강탈당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1주 1의결권 등 시장경제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소액주주 대신 투기펀드만 활용할 소지가 있다. 근로자 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은 회사 발전보다 근로자, 소액주주 이익만 주장해 의사결정 지연과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다중대표소송 도입은 주주 간 이해상충 소지가 있고 소송리스크 확대 등의 부작용이 크다. 전자투표제 의무화는 최근의 가짜뉴스처럼 악의적 루머공격 시 투표 쏠림과 결과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은 정책을 신뢰한 기업만 손해 보는 문제를 재연하고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져 불확실성이 가중된다.
-경영권방어조차 못하고 투기세력공격에 노출돼
지배구조 규제 강화를 논의하면서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등과 같은 효과적인 법적ㆍ제도적 방어수단이 확보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상장회사들은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나 변칙적 순환출자 등을 이용해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기존 순환출자 해소는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를 불러온다. 현재는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되고 기존 순환출자는 자발적으로 해소하도록 했는데 개정안에 따라 기존 순환출자까지 3년 내 해소하려면 삼성, 현대차, 롯데 등 8개 대기업은 최소 수조원이 들어간다. 삼성의 경우 이미 삼성전자의 분할을 비롯해 지배구조 개선로드맵을 마련, 추진하고 있다. 일부 예외를 인정해주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도 자발적인 지배구조개혁을 오히려 더디게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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