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무궁화대훈장'이란 게 있다. 역대 대통령ㆍ배우자, 우방국 전ㆍ현직 국가원수ㆍ배우자에게 주는 우리나라 최고 훈장이다. 그런데 이 훈장은 수여할 때마다 수여 기준, 절차ㆍ방식 등을 둘러 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상 초유의 탄핵ㆍ조기 대선 국면에서 적폐 청산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 논란을 어떻게 해소할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21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제정된 법령에 따라 역대 대통령ㆍ배우자에게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한다. 우리나라의 발전과 안전보장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ㆍ현직 우방국 국가원수ㆍ배우자에게도 줄 수 있다. '최고 훈장' 답게 금 190돈과 은 110돈, 기타 보석류 등으로 치장돼 1인당 제작비용이 5000만원에 달한다. 부부가 받을 경우 1억원의 비용이 든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다른 훈장들이 모두 공적주의를 따르는 반면 무궁화훈장은 유일하게 직위주의를 따른다는 것이다. 외교사절들에게 의례적으로 주는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등 다른 훈ㆍ포장들은 해당자의 신분이나 직위와 관계없이 '공적'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 무궁화대훈장의 경우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오르면 무조건 주도록 돼 있다. 상훈법상 '대통령 및 배우자에게 수여한다'고 규정해 놨다. 재임시 업적에 대해 혹평을 받더라도 무조건 받는다는 점에서 '공적=훈장'이라는 일반인의 상식에 맞지 않다. 황제가 스스로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하던 관습이 남아 있는 셈이다.
신분ㆍ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현대 민주사회의 원칙에는 맞지 않다. 특히 역대 대통령 중 대부분이 이렇다할 공적도 없는 취임 초기에 이 훈장을 받았다. 노무현ㆍ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같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임기가 끝날 무렵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다.
'셀프 수여'가 불가피한 절차ㆍ방식도 항상 논란이다. 상훈법상 현직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자신이 받는 무궁화대훈장 수여를 스스로 의결한다. '셀프 수여'라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당선자 시절 현직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여하는 방식을 택해 셀프 수여 논란은 피했지만, '대통령'이 아니라 '당선인' 신분으로 받아 편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박탈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상훈법상 다른 훈·포장들은 취소ㆍ박탈이 가능하다. ▲공적이 거짓인 경우, ▲국가안전 위해 및 적대 지역 도피범 ▲형법ㆍ관세법ㆍ조세범 위반으로 징역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이같은 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전두환ㆍ노태우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박탈 대상일 수 있다. 내란죄로 사형ㆍ징역22년6개월을 이미 선고받았거나, 탄핵 후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다른 훈장은 취소하면서도 무궁화대훈장은 그대로 두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이면 무조건 주도록 돼 있는데, 이를 박탈하면 대통령으로 재임했다는 사실마저 부인하게 되는 논리적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도 지난 10일 취임 직후 현행 상훈법상 무궁화대훈장 수여 대상이 됐다. 아직까지 청와대 측은 무궁화대훈장 수여에 대한 뚜렷한 방침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행자부 관계자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현재로선 무궁화대훈장 수여와 관련해 어떤 방침이나 지시도 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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