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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서의 책갈피]무엇이 인간을 차가운 계산기로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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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가성비 높여주는 만능 학문 아닌 '디스토피아 주범'
"아틀라스마냥 세계의 짐 짊어지지만 그 어깨는 너무 좁아"
만사 해명하려는 태도 벗고 지역적·구체적·민주적 경제학돼야


[장인서의 책갈피]무엇이 인간을 차가운 계산기로 만드나 '차가운 계산기-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표지사진. <필립 로스코 지음/홍기빈 옮김/열린책들/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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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가성비(價性比ㆍcost-effectiveness). 가격 대비 성능 또는 효능을 뜻하는 이 단어는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을 비롯해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경제용어다. 가성비는 이미 글로벌 정치경제와 국가 정책기획의 기본좌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는 직업과 배우자, 친구의 선택, 누군가에게 줄 꽃을 사는 행위 등 사적영역까지 전면으로 침투해 우리 마음 속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무엇이 인간을 차가운 계산기로 만드는가?' 필립 로스코(세인트앤드루스 경영대학 부교수)의 첫 대중 저술서 '차가운 계산기-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는 인간 본성에 대한 궁극적 의문을 출발 삼아 경제학의 본성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경제학을 희소한 자원에서 구해줄 마법사, 즉 비용 대비 가장 높은 효용을 안겨 주는 실용적이고 무해한 학문으로 이해해왔다. 그 밑바탕에는 각 사안마다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주체인 '경제적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다. 그러나 로스코는 이 가상의 모델이 계몽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개념으로, 산업 시대와 자본주의를 거치며 오늘날의 지배적인 인간형으로 올라섰다고 주장한다. 곧 우리가 확신하는 '경제적 인간'은 인간의 본성이 발현된 것이라기보다 학습과 제도에 의해 구성된다는 설명이다. 소유권과 수익을 행동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놓는 행정 시스템으로 바꾸기만 해도 자기 이익에 충실한 인간형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는 절묘한 문학적 비유와 폭넓은 실증 연구, 자기의 구체적인 경험을 한데 녹여 냄으로써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반대어)'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어떻게 경제학은 이토록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중략) 그 대답은 우리가 소유하고 사용하는 여러 사물들에 있다. 돌봄과 안전, 투자, 교육, 연애, 쇼핑, 가정생활 등 우리가 바깥세상에서 수행하는 온갖 활동 영역에서 사용하는 여러 장치들 (중략) 일상적이고 물질적인 여러 물건들 속에 경제학이 암약하기 때문이다. 이 간단하고도 무해한 장치들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존재하는 노력을 모두 빼앗겨 버리며, 그러한 노력은 여러 가지 데이터베이스, 점수표, 시스템, 순위 등으로 분해되어 사라지고 만다."(306~307쪽)


로스코는 경제적 인간형의 탄생 원인을 경제학의 본질에서 찾는다. 더 깊게는 경제학이 현상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학문에 그치지 않고 근거가 불분명한 계산에 기초해 '새로운 사실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경제적 인간'과 명확한 질서를 가진 '경제'라는 세계 자체가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지적한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아우르는 행동경제학 출범 이후 경제학은 로스코의 말처럼 '문화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만사만물에 설명을 제시하는 전지전능의 과학'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경제라는 세계는 우리가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규칙들로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실로 매혹적인 질서와 명확성을 가진 세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학이 그 세계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라는 세계의 조직과 구조와 통치 자체가 바로 그 경제학의 규칙들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로스코는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며 기껏해야 '실험실 과학'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어 경제학이 어떻게 쇠사슬을 끊고 실험실을 탈출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 모두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강조한다.


로스코에 따르면 경제적 논리는 우리가 쓰는 언어와 특수한 장치에 기대어 벌어지는 정교한 쇼와 다름없다. 경제 전문가들은 모든 도덕적 문제들을 기술적 시뮬레이션으로 환원해 버리려고 기를 쓴다. 이는 집 사기, 교육 받기, 주식 거래하기, 사랑에 빠지기, 병에 걸리기, 죽음과 주검을 거두는 과정 등 일상적인 환경에서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다. 나아가 전문가들이 확립한 측량법에 따라 인간의 목숨에 가격을 매기고, 한 사람이 얼마나 신용할 만한지 점수를 매기며, 환자들 중 치료받을 사람과 놔둘 사람을 점수를 매겨 구분 짓는다.


영국에서 효율적인 의료 배분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질 보정 수명(Quality Adjusted Life Yearㆍ환자의 예상 잔여 수명에다 그 기간에 예상되는 삶의 질을 곱한 것)' 지수가 개발되자 알츠하이머병과 치매 환자는 국민 의료 서비스(NHS)의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투입 비용 대비 그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로스코는 경제학이 우리가 흔히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고 여기는 대상에까지 가격을 붙이는 방식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가 "경제학은 아틀라스마냥 온 세계의 짐을 스스로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슬프게도 경제학의 어깨는 너무나 좁다(28쪽)"고 말한 이유다. 이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학이 만사만물을 해명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주어진 단 하나의 문제와 씨름하는 공학적 수준으로 몸을 낮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보기에 좋은 경제학이란 '지역적이며, 구체적이며, 민주적인 경제학'이다.


그는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린 경제적 도구들은 이제 우리들을 향해 타인의 존엄과 인격적 개성을 무시하고 그들을 우리 삶을 조직해 주는 다면적인 비용-편익 분석의 투입 요소들로 환원해 버리라고 재촉하고 있다. 여기에 위기가 있다"고 했다. "경제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세밀한 예측들을 내놓고 있다(241쪽). 우리가 필요로 하는 애인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인 행위자가 아니다(본문 333쪽)"라는 저자의 말은 '가성비'에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하다.


로스코는 랭커스터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융 저널리스트와 사업가로도 활동했으며 이후 리즈 대학에서 신학,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아랍 사상을 공부하며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2011년 AHRC와 BBC 라디오 3에서 선정한 '새 시대 지식인 발굴'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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