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예퇴진 역대 대통령들, 이른시일 내 청와대 퇴거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하면서 대통령 관저(官邸)가 헌정 사상 다섯 번 째로 주인을 잃게 됐다. 청와대는 향후 60일 내 열리게 될 대통령 선거를 거치고 나서야 빈집 신세를 면케 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소장 권한대행 이정미)는 이날 오전 11시 선고 공판을 열고 박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상실하고 민간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아울러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국정 최고지도자의 관저인 청와대에 머무를 권리도 잃게 됐다. 현행법상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언제까지 청와대에서 퇴거해야 한다는 사례는 없지만, 하야를 선택한 역대 전직 대통령들도 이르면 당일, 늦어도 사흘 안에 관저를 떠났고, 피살된 전직 대통령의 유가족이 퇴거하는데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던 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관저가 이처럼 주인을 잃은 것은 헌정 사상 다섯 번째다. 국정 최고지도자가 머무는 관저가 다섯 차례나 빈 집이 됐던 것은 그만큼 한국현대사가 굴곡져왔음을 방증한다.
첫 사례는 1960년이다. 3·15 부정선거에 이어 4·19 혁명으로 권력을 지탱할 수 없게 된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60년 4월26일 하야를 선언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하야한 지 이틀 뒤인 28일 오후 3시 청와대의 전신 경무대(景武臺)를 떠나 사저인 이화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후 경무대는 고 내각제 대통령인 윤보선 전 대통령이 입주한 8월14일까지 100여일간 빈 집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도 불명예스럽게 청와대를 떠나긴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를 작명한 윤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용인한 이후 허수아비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1962년3월22일 하야를 선언, 당일 오후 4시 안국동 사저로 돌아갔다. 4·19 혁명 이후 민의원에서 대통령으로 선출 된 지 1년7개월여 만이었다.
청와대 입성 전 "문호를 개방하여 국민의 벗이 사는 집으로 만들겠다"고 호기를 부렸던 윤 전 대통령은 사저로 이동하면서 기자들에게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청와대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3공화국의 정식 대통령으로 선출되기까지 600여일 동안 공식적으로 주인을 갖진 못했다.
청와대가 세 번째로 주인을 잃은 것은 17년이 흐른 1979년 10월26일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돼서다. 당시 큰영애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유가족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지 26일 만인 1979년 11월21일 19년만에 청와대를 비워주고 신당동 사저로 돌아가야 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50일만에 청와대의 새 주인이 된 고 최규하 전 대통령도 청와대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1979년 12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에 피선된 최 전 대통령은 그해 14일 청와대로 입성 했으나, 이듬해 신군부의 군사쿠데타로 사임한 지 이틀만인 1980년 8월18일 서교동 사저로 거처를 옮겼다.
한편 청와대의 새 주인은 60일 이내 치러질 차기 대선에서 결정된다. 다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등 일부 대선주자들은 대통령의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 등으로 옮긴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 상황은 유동적이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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