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 기준 자산 10억달러...일본 최초, 아시아 27번째 억만장자 반열에 올라
"억만장자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대신 세계가 필요로 하는 기업을 통해서 유명해지고 싶었죠.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요"
고졸학력에 비서직 경력이 전부인 주부에서 일본 최초의 자수성가한 여성 억만장자가 된 시노하라 요시코(篠原欣子.82) 템프홀딩스 명예회장 겸 창업자의 말이다. 시노하라 명예회장은 '여성은 남편을 내조하는 사람'이며 임시 일자리라도 남편과 함께 알아봐야 한다던 1970년대에 도쿄의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회사를 창업해 지난해 연매출 45억달러(5조2500억원)의 거대한 회사로 키운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그는 간호사와 간병사 등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기념재단을 설립한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개인 재산은 1월 기준으로 10억달러(1조1600억원)를 넘었다. 인재 알선, 파견 종합 건설팅 회사 템프 스태프 주식 25%와 계열사 주식 배당금을 합친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템프스태프 주가가 11.5%나 치솟으면서 개인자산이 10억달러를 넘어섰다고 포브스는 설명했다.
시노하라의 성공스토리는 극적이다. 1934년 생인 그는 2차 대전을 경험했다. 여덟 살 때 교사인 아버지를 여의었다. 20대에 결혼했다가 곧 이혼했다. 최종학력은 고졸이다. 영국을 거쳐 호주로 가서 비서로 일하다 귀국해 일본 최초의 인재 파견업체 ‘템프스태프’를 창업했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자수성가한 여성 억만장자가 됐다. 아시아에서는 27번째다.
시노하라 창업의 출발점은 이혼이었다. 자기 짝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전문기술이 없었던 그녀는 생계가 막막했다. 당시 일본에서 여성은 취직을 해도 차를 나르는 등 보조업무만 했다. 기회란 없었다. 그래서 일본을 떠났다. 영국으로 갔다가 최종으로 호주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는 여성들이 임시직으로 일한다는 것을 목격했고 그 역시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그 일을 배웠다. 시노하라가 2009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인터뷰에서 한 말마따나 “실수란 기회의 바다”였다.
1973년 귀국해 도쿄에서 7평이 조금 넘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창업했지만 곧 노동성의 반대에 직면했다. 종신고용 사회인 일본에서 민간기업의 임시직 채용은 불법이어서 당국에 소환됐다. 그는 굴하지 않았다. 다른 인력파견업체와 함께 열심히 로비했고 결국 법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사업 진전은 더뎠다. 밤엔 영어를 가르쳐 번 돈으로 겨우 지출을 댔다. 5년 만에 그는 사무실로 첫 이사를 했다.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템프스태프의 후신 템프홀딩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만 등 전세계에 313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매출 45억달러를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성공의 밑바탕엔 1988년부터 남성 임시직 채용과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있다. 임시직 파견업체가 남성을 임시직으로 채용해 매출이 늘었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O년이란 장기 침체에 빠지자 기업들이 고비용 종신 고용자 채용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이는 템프스태프에겐 도약판이 됐다. 2008년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2년 뒤에는 미국 인력파견업체 켈리서비스의 지분 4%를 취득해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었다. 이는 중국과 홍콩, 한국에 합작회사도 차리는 등 회사를 확장시키는 견인차가 됐다.
오늘날 템프홀딩스는 인재 채용, 임시직 알선, 컨설팅 등을 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일본과 미국, 중국, 인도 등 13개 국에서 2만7000개의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있다. 향후 성장 가능성도 높다. 일본의 고령화 가속화에 따른 일자리 부족을 임시직 파견이 채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시노하라의 불굴의 투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답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제 성격 중 하나가 지기를 싫어한다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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