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여성칼럼] ‘더러운 잠’과 여성 대통령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2분 11초

국회에 명화를 패러디한 박근혜 대통령의 누드화가 전시되었다. 표현의 자유인가, 여성비하인가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이루어졌다. 한 언론사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 실시한 바에 의하면 그림 자체로만 보면, ‘문제없다’는 응답이 43.8%,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42.7%, 전시장소로만 보면,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53.9%, ‘문제없다’는 응답이 32.6%로 조사됐다. 아마도 그림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는 데 응답한 이들은 최고 권력자에 대한 풍자 자체가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과 누드화까지 풍자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했을 것이다. 더구나 비아그라가 쏟아져 나오고 시중에 박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된 온갖 루머들이 돌고 있는 사정을 감안해 성적 관념과 직결되는 누드화가 일견 공감을 자아냈으리라.


전자는 권력자에 대한 일반적인 풍자에 대한 진전된 사회통념의 반영이며, 후자는 비아그라와 사생활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라는 특정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후자라는 특수한 조건이 없었다면 여성계의 비판이 보다 일반적인 지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혼외자녀를 둔 전직 대통령이나 사생활과 관련되어 루머가 있었던 어떤 정치인도 누드화로 공개적인 풍자대상이 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남성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예술적 영감이란 것에도 정치가 내면화되어 있다. 창작의 주체인 예술가도 사회적 존재다. 그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에게 사회적 의식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유독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의식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오래 전 학력위조 논란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모씨의 사건이 있었다. 그때에도 그이의 나체사진이 유력 일간지에 게재되었지만 그이와 문제가 되어 직을 잃었던 남성에 대해서는 그 비슷한 일조차 없었다.


내가 예술에 문외한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누드화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 훨씬 많은 것 같다. 활동하는 작가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고. 여성 누드화가 많은 것이 여성의 몸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름다움에 대한 또 하나의 편견은 아닐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이 남성의 그것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 또한 일종의 사회화의 결과일 수 있다. 여성의 누드가 아름다움과 전복의 도구라 하는 이도 있지만 남성의 누드도 아름다울 수 있고 모든 가식과 치장을 벗어버린 것이란 점에서 여성누드와는 또 다른 전복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문제가 된 작품은 박대통령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런 논거로 ‘더러운 잠’을 옹호하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다.

침몰한 세월호를 배경으로 침대에 누워 자는 대통령의 잠은 ‘더러운 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사실 일반적으로 어떤 이도 이처럼 누드로 자지는 않는다. 머리를 했든 성형시술을 받았든 세월호와 같은 국가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허비했던 것을 더러운 잠이었다고 비판하고 싶다면 굳이 누드가 아니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더럽다는 말을 통해 작가는 세월호를 버린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항간에 떠도는 대통령의 성적 문제에 관한 소문이나 추측을 작품화하고 싶었던 걸까? 작품 의도는 창작자만이 아는 것이니 내가 알 길이 없다.


내가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주장하는 것처럼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예술적 영감과 표현의 자유를 생명으로 하는 창작자의 표현은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아직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작동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예술인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예술적 표현이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창작에 임해 달라고. 여성상위니 뭐니 해도 아직 우리 사회에 여성차별의 벽은 생각보다 엄청 높다는 것에 대해서도 깨어 있어 주면 좋겠다고. 또한 아직도 두터운 유리천장에 맞서 치열하게 실천하는 여성단체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세월호 7시간을 문제 삼는 것이 여성혐오라면서 성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뜻을 더럽히고 왜곡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국회 전시에 관계되었던 의원의 부인과 딸을 대상으로 하는 보수집단들의 공격에 대해서도 즉각적이고 강력한 비판성명이 필요하다고.


끝으로 이번 사태를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을 넘어 해당의원 윤리위 회부까지 감행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앞으로 어떤 문화예술정책을 펼지 몹시 우려되며, 별로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이가 저지른 비상식적인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봐야 하는 것이 같은 여성으로서 참으로 씁쓸하고 아프다는 것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강민정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