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지연땐 충당금 추가적립 검토에 배임·평가체계 유명무실화 지적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 하반기부터 은행들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채권 매각을 일부러 지연하거나 장부상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거액의 충당금을 쌓는 방안을 실시할 방침이다. 이는 충당금을 쌓을 수록 은행에 부담인 만큼 사실상 은행의 구조조정채권 매각을 강제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간 구조조정채권은 채권은행과 매수 희망자가 각각의 회계법인을 통한 평가결과로 가격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할 경우 조정 수단이 없어 매각이 어려웠다. 이에 금융당국은 상반기 내 산업전문가, 법정관리인 등 위주로 구성된 채권은행과 매수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구조조정 전문가를 중심으로 독립된 공정가치 평가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 은행 평가액과 독립 평가기관이 산출한 가격이 차이가 날 경우 차액 만큼 은행에게 충당금을 추가 적립하도록 불이익을 준다"며"내달 9일 금융연구원의 기업구조조정 세미나를 통해 업계 의견을 수렴해 고칠 필요가 있는 규정은 고쳐서 하반기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내부 평가 가격 보다 싼값에 팔 가능성이 높은 만큼 배임 논란이 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은행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채권은 미래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며 "내부적으로 가치를 높게 판단하는데, 독립 평가기관의 낮은 산출가격으로 매각하면 배임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개별 은행이 자체 기준으로 채권가격을 평가하는 일이 소용없게 되는 만큼 시장경쟁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덧붙였다.
시중은행들은 구조조정기업에 당좌대출, 무역금융 등 한도성 여신을 제공하지 못하는 내용의 내부규정에 대한 금융당국의 개정 추진에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매각 대상 구조조정 기업에 여신을 유지하거나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건전성 유지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라는 별도의 구조조정 절차가 있는데 당국의 개정 추진은 은행의 부담을 높이는 것"이라며 "매각 후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얼마든지 자금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강구귀 기자 ni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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