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정현진 기자] '뇌물죄 성립요건인 대가관계에 대한 소명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밝힌 사유는 이렇게 요약된다.
조 부장판사는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구체적 사실관계,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구속영장 청구사유로 뇌물공여ㆍ위증ㆍ횡령 혐의를 적시했다. 핵심은 뇌물공여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음을 지적받은 셈이 됐다.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본안재판처럼 치밀할 수는 없지만, 형사소송절차상 특검(검찰)의 수사 상황에 대한 '1차 판단'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특검으로서는 뇌물수사의 첫 관문에서 '삐끗' 한 것이다. 수사의 중대 고비에 봉착한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 전략 또한 다소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의 신병 확보 여부를 재판의 최종 결과, 즉 유무죄나 양형의 절대적 가늠자로 삼을 순 없다. 그러나 특검이 재계와 법조계 안팎의 우려를 일축하고 장고 끝에 구속영장 청구라는 강수를 뒀던 만큼 반작용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당장 설 연휴 직후(2월 초)에 진행하겠다는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 차질이 빚어진 분위기다. '뇌물을 건넨' 이 부회장을 구속하고 '뇌물을 받은'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한다는 게 특검의 구상이었다. 가뜩이나 '특검의 정치중립'을 문제삼던 박 대통령 측이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카드'를 빌미로 어떤 입장을 취할 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게 반론의 단서 중 하나다. 특검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박 대통령과 최씨 측에 각종 금전지원을 했다고 본다.
문 전 장관은 특검 조사에서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을 압박했고, 이는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건 특검이 적용한 혐의가 소명 됐다는 뜻이다.
삼성이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뒤에도 최씨 측에 대한 은밀한 지원 행위를 지속했다는 의혹 등 추가로 제시된 각종 의혹의 파괴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검 수사의 향후 흐름이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점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 부장판사의 판단을 이 부회장 혐의에 대한 것으로만 제한해선 안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위 '경제에 미칠 영향', 즉 법리 외적인 요소에도 무게를 뒀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 혐의와 구속영장 청구 기각을 둘러싼 각종 분석이나 관측과 별개로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다른 대기업들은 일단 가슴을 쓸어내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다음 타깃으로 거론되던 상황에서 특검이 주춤했기 때문이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돈을 댄 대기업들 중 '이해관계 이슈'에 얽혔던 SK그룹과 롯데그룹, CJ그룹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세 기업은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각각 111억ㆍ45억ㆍ13억원을 출연했다. 특검은 이들 기업이 총수(최태원 SK, 이재현 CJ 회장)의 사면, 면세점 인허가(롯데)라는 현안에 붙잡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기각 결정이 나오기 전인 18일 오후 "(이 부회장의) 영장심사 결과와는 상관 없이 대기업들 조사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는 말로 의지를 내비쳤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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