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수사개시 이후 첫 구속자·압수수색 '삼성 관련'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기각으로 본격적인 수사 개시 이후 한달만에 고비를 맞았다. 70여일간의 특검 수사 기간 가운데 첫 고비를 맞은 특검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뇌물죄 수사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검은 수사 개시 첫날부터 삼성 '뇌물죄' 수사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한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와 세종시 보건복지부 사무실 등을 첫 압수수색지로 선택하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한 과정 등을 집중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같은 특검의 수사 방향은 본격적인 수사 개시 이전부터 드러났다. 앞서 특검은 '비선실세' 최순실(구속기소)씨 측 자금 지원의 실무를 담당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과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정보 수집 차원에서 사전 접촉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후 특검은 지난달 24일 첫 소환자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불러 삼성의 뇌물죄를 비롯한 각종 혐의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고, 이틀 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는 데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소환조사했다.
지난달 27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격 소환한 특검은 문 전 장관을 긴급체포했고 같은 달 31일 구속했다. 문 전 장관은 특검 출석 전까지만 해도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바 없다고 부인했지만 특검 조사에서 결국 이를 시인하고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삼성 임원진으로는 처음으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지난달 29일 소환해 조사했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가 최 씨의 조카 장시호(구속기소)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 가량의 자금 지원을 하는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상태다. 이후 특검은 대한승마협회 등 삼성의 뇌물죄 관련 장소를 일부 압수수색했고 이 외에도 특검은 김진수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 등을 잇따라 소환조사했다.
특검은 삼성의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 사장, 박 사장 등 삼성 임원진을 소환 조사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삼성그룹의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을 소환해 22시간이 넘는 고강도 조사를 진행했다.
아울러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장 씨로부터 최 씨의 태블릿PC 한 대를 확보해 삼성 지원금 제공 관련 이메일을 다수 확보했다. 2015년 7~11월께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 이 태블릿PC로 최 씨는 독일에서의 조력자로 알려진 데이비드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 박 전 승마협회 전무,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대한승마협회 부회장) 등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한달간의 수사와 이 부회장의 진술 등을 토대로 지난 16일 법원에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위증·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19일 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 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담당한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하여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이에 특검은 그동안의 수사 내용을 재검토하고 법리를 재차 세우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뇌물수수자로 지목된 박근혜(직무정지)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도 다소간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18일 정례브리핑에서 기각 시 구속영장 재청구 가능성에 대해 "아직 영장 결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드릴 말이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한달여간의 수사 끝에 이 부회장을 피의자로 소환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한 상태에서 당장 특별한 추가 혐의점을 찾아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기존에 세운 논리를 바탕으로 일단 관련자들을 불구속 기소하고, 향후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는 방안이 유력해보인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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