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이란격석(以卵擊石)'. 전국시대 묵자(墨子)가 점장이의 예언을 두고 '손해만 볼 뿐 이익이 없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꾸짖었다는 이 사자성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로 해석된다.
◆원내대표 경선으로 명분·실리 챙긴 친박…'골든타임' 놓친 비박= 지난 16일 집권여당의 운명을 걸고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 간에 벌어진 원내대표 경선이 이 같은 모양새였다고 정치권 주요 인사들은 분석하고 있다. 탈당과 신당 창당, 잔류 등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비박 진영은 머뭇거리다가 튀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범친박인 중도성향의 4선 정우택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당선되자마자 친박 지도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퇴했다. 신임 정 원내대표는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맡으며 전권을 행사하게 됐다. 친박이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긴 한 수였다.
반면 비박계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조만간 새 지도부 격인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질 예정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재창당 수준의 새누리당 리모델링은 불가능해졌다. 정 원내대표가 비주류 측에 비대위원장을 양보할 수 있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으나, 쉽사리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한 친박 재선 의원은 "당내 다수파인 친박계가 당연히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친박·비박 공동위원장 형식으로라도 당권을 유지할 것이란 얘기다. 백번 양보해 비대위원장을 비박 추천인사로 채우더라도 원외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비대위원들은 친박·비박 성향의 인사들이 5 대 5 혹은 6 대 4의 비율로 채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비박 측이 주장해온 인적 쇄신과 재창당은 물 건너가게 된다. "좌파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며 차기 대선을 우려하던 비박계에게 친박의 당권 유지는 새누리당의 대선 필패와 동의어일 따름이다.
정치권에선 새누리당의 분당(分黨)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는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일주일 정도 고민한 뒤 (탈당을) 최종 결심하겠다"고 말했다. 비주류의 또 다른 축인 유승민 의원도 당 사무처 직원들과 만나 "신중하게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당분간'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비박계는 휴일인 18일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진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다.
불과 닷새 전인 지난 13일까지만 해도 선택지는 다양했다. 김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탈당과 신당 창당 가능성을 강조했다.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탈당하자"고 주장했다가 유 의원 등 잔류파의 반대로 뜻을 접었다. 김 전 대표가 보기에는 이즈음이 탈당의 '골든타임'이었다.
김 전 대표가 원내대표 경선을 거부하고 전격 탈당을 주장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있었다. 타이밍을 놓친 비박들은 수세에 내몰렸다. 이대로 탈당을 결행하기에는 명분이 약해졌다. 동물적 정치감각을 지닌 김 전 대표는 원내대표 경선 결과도 어느 정도 예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직후 비박 진영에선 최소 27명의 친박 의원들이 찬성 쪽으로 기울었고, 이들이 '탈박(탈박근혜)'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종의 과대 포장이었다.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2명이 모두 탄핵에 찬성했다는 가정 아래 탄핵 찬성 대오에 합류한 여당 의원은 62명으로 추산됐다. 찬성표를 던진 234명에서 단순히 172명을 뺀 숫자다.
이렇게 추정된 여당 탄핵 찬성의원 62명 가운데 비박계 탄핵파 35명을 뺀 27명이 친박 측 탄핵파로 분류됐다. 이들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박 측을 지지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무르익었다.
◆62 VS 55, 예측 가능했던 수치…與 범친박 70명 육박, 19대 국회가 뿌리= 결과적으로 오산이었다. 탄핵안 표결 당시 불참·기권을 포함해 반대 의사를 밝힌 여당 의원만 59명에 이른다. 여기에 무효표를 던진 7명도 실질적으론 탄핵에 반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128명의 여당 의원 중 과반이 조금 넘는 66명이 친박 지도부와 행보를 같이 했다는 뜻이다. 촛불민심에 정치생명을 위협받은 뒤 '보신용'으로 투표에 임한 의원들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이렇게 추산된 친박 지도부 동조세력은 70명에 육박했다. 게다가 친박은 역대 당내 경선에서 최소 46표, 최대 69표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앞선 19대 국회에서도 끈끈한 단결력을 과시해온 셈이다.
지난 16일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박의 지원을 받은 정 원내대표는 9명의 동료 의원이 기권했음에도 62표를 얻어, 비박 단일 후보인 나경원 의원을 7표차로 제쳤다. 친박·비박 사이의 중립지대로 이동한 의원들이 상당수란 전망도 친박 측의 '엄살'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생각보다 친박 측 이탈표가 적었다는 주장이다.
한때 30명 안팎으로 분류된 중립그룹은 한때 '원조 친박' '근박(近朴)' '원박(遠朴)' '복박(돌아온 친박)' 등 하나같이 박 대통령과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이었다.
지난 19대 국회의 여당 세력 지형도를 살펴보면 새누리당이 뼛속부터 친박당인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새누리당에는 전문가그룹과 직계그룹, 원로그룹 등 박근혜 정부를 떠받치는 다양한 세력들이 존재했다. 정몽준·이재오 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비주류 그룹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박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 이후 구심점이 약화된 친박계는 필연적으로 분화되는 수순을 밟았다.
지난해 6월 '국회법 개정안 파동'에 따른 유승민 의원(당시 원내대표)의 거취를 놓고 의총에서 표 대결 가능성이 점쳐지던 시절 당 안팎에선 친박·비박의 구체적인 지형도가 공개됐다. 당시만 해도 새누리당 안에선 친박보다 비박의 숫자가 더 많았다. 이른바 '유승민 키즈'로 불리던 의원들과 대구·경북(TK) 초선들, 당 사회적경제특위 멤버, 한국개발원 출신 등이 뭉쳐 '유승민 구하기'에 앞장섰다. 여기에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전 의원과 범비박계 정두언 의원, 김무성계 등이 모두 유 의원에게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형성된 친박 대 비박의 세력지형도는 전체 160명의 여당 의원 중 51대 109로까지 추산됐다.
하지만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몰아친 '공천 광풍' 속에서 여권 비박계는 개혁 공천이란 미명 아래 상당수가 정치적으로 몰살됐다. 반면 친박 성향 인사들은 대거 원내에 재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구성된 20대 국회에선 지역구 의원 111명 가운데 친박이 64명, 비박은 47명으로 분류됐다. 비례대표인 17명도 1~2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친박 성향이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낙점에 친박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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