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6일 재계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열린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진로를 두고 총수간에 엇갈린 시각차를 보였다. 전경련 최대 회원사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경련 탈퇴에 이어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SK와 LG 등도 탈퇴 가능성을 열어뒀다. 전경련 해체를 두고서는 9명의 총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주장해온 해체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구본무 LG 회장이 밝힌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의 변신과 최태원 SK회장이 말한 환골탈태 수준의 고강도 개혁 등 발전적인 해체를 통한 재탄생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하태경 새누리당이 의원이 거듭 전경련 해체를 종용하자 "제 입장에서 해체를 꺼낼 자격이 없다.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앞서 오전에도 하 의원이 "삼성이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겠느냐. 앞으로 전경련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재촉하자 "그러겠다"고 답했다.
최태원 SK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은 하 의원이 연이어 전경련 탈퇴 의사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네"라고 했다. 하지만 하 의원이 강압적으로 답변을 이끌어 내 진위 여부를 당장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묻자 "의사는 있다"고 말했지만 전경련해체는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안 의원은 특히 총수들에게 "전경련 해체에 찬성하는가"라는 질문 대신에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면 손을 들어달라"고도 요구했다. 안 의원이 거수를 요구하자 결국 총수 9명 가운데 신동빈, 구본무, 김승연, 정몽구, 조양호 회장 등 5명이 손을 들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해체에 대해 언급을 삼갔고 구 회장의 경우는 새로운 기관으로의 재탄생이 필요하다고 밝혀 해석의 여지가 있다.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 회장은 전경련 해체 요구와 관련 "불미스러운 일에 관여(인볼브)됐다는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도 해체를 검토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체설을 차치하더라도 삼성 SK LG 등의 전경련 회원사 탈퇴는 전경련의 존립기반을 상당히 약화시키는 결과가 된다. 전경련은 2000년대부터 무용론이 줄곧 제기돼 왔다가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의 의혹이 '최순실게이트'로 확산되면서 해체론에 힘이 실려왔다.
전경련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출범한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하며 산업화를 주도하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회장을 맡았을 때는 전경련이 재계의 본산, 회장이 재계의 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부 이후부터 대기업중심 경제정책에 대한 회의론과 재벌 규제강화 요구가 높아지면서 정권과의 마찰이 잦고 1998년 대규모 구조조정인 이른바 빅딜로 일부 회원사가 이탈하면서 내부 균열이 시작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99년 회장에 물러난 이후에는 회장을 맡겠다는 총수가 없어 구인난을 겪어 왔다. 주요그룹 총수들의 잦은 불참으로 전경련 회장단 회의도 위상이 낮아졌다. 대한상공회의소나 무역협회와 달리 회장직이 비상근인 특성상 상근부회장이 조직을 장악하면서 나온 문제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미 3연임을 한 현 허창수 회장(GS회장)은 이미 내년 2월 임기가 만료되면 회장직을 내놓겠다고 했다. 전경련을 실질적으로 끌어온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에서 대기업 모금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 거센 책임론에 직면해 있다. 이미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회원사 이탈도 이뤄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전경련이 고강도 개혁을 하거나 발전적 해체 후 재탄생하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시아경제가 지난 10월 10, 11일 이틀간 제조업을 주력으로 하는 30대 그룹(응답 26개 그룹)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다수인 24곳이 전경련의 현 상황을 위기라고 진단했다. 대다수 회원사들은 발전적 해체 수준의 고강도 쇄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해체 후 새로운 단체로 재탄생해야 한다(3곳)거나 해체 후 기존 경제단체로 흡수 또는 통합해야 한다(1곳)는 의견도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의 전경련 위상으로는 재계 내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국가가 전경련의 위상과 방향성에 동의하고 회원사들이 전경련의 존재 이유를 알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서 "재벌을 대변하거나 회원사만을 위한 전경련을 벗어나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사랑받는 전경련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