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벌어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훔쳐가지 못했다. 훔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세계 최초의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부터 이미 상점 주인이 결제수단을 카드 및 스마트폰으로만 제한할 수 있게 됐다. 길거리의 노점상도 카드 결제기를 갖추고, 교회의 헌금 수납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이체한다. 유럽의 주요국들은 2010년부터 현금 없이 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현금 없는 사회가 올 까? 며칠 전 택시기사와의 대화에서 오간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요즘 3000원 짜리도 다 카드로 결제해서 참 어려워요. 그런데 택시강도는 이제 없어진 것 같아요." 훔칠 돈이 없는데 강도가 있을 리 없다.
우리나라도 곧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할 것이다. 한국은행의 '경제주체별 화폐사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50대는 평균 40만원의 현금을 보유하나, 20대는 14만원의 현금을 보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 5대 주요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현금자동지급기(CD) 보유 대수는 2013년 3만1688대에서 지난해 2만9611대로 연평균 3.3%로 감소했다. 시간이 갈수록 국민의 현금 보유 성향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측면에서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할 시점이 가속화하고 있다. 먼저, 온라인 쇼핑이다. 2010년에는 전체 소매판매액에서 온라인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이 8.2%였으나, 올해 3분기에는 17.3%에 이른다. 현금을 사용하려야 할 수 없는 환경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핀테크 기술의 확산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금융거래 전산화는 현금 없는 사회로 도약하는 기반 기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에 기반을 뒀을 때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되고, 보안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현금이 없을 때 더 효율적이 될 수 있다. 셋째, 화폐 생산 비용이다. 10원짜리 동전 하나 만드는 데 20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제조원가 외에도 지하경제 및 조세회피 등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고 있어 화폐 의존도를 낮아질 전망이다.
정책 의지도 강하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권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축하고,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전격 편입시키기로 결정했다. 더욱이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뿐만 아니라 제조, 유통, 공공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 적용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블록체인 혁명이 예고되는 시점이다. 한국은행도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의 도입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거스름돈을 카드에 충전하거나 계좌에 입금해 주는 소액 결제망을 구축할 것이다.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단계적 변화를 유도하고, 정보소외계층에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일시 거래 충격이 오거나 돈의 가치가 급락하는 일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블록체인 등의 주요 핀테크 기술과 거래 플랫폼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는 그 변화를 주도하는 기술과 산업이 있다. 국내 기업들이 해당 영역으로 진출 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양성하고 경영여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보 보안 시스템 마련이 요구된다. 이전처럼 한정된 영역의 정보만 해킹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광범위한 영역의 정보가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 없는 사회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김광석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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