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와 사전 상의 없이 김병준 청와대 전 정책실장을 신임 총리 후보자로 내정함에 따라 그동안 정국수습책으로 거론됐던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가시밭길에 들어서게 됐다. 여야 합의로 책임총리를 임명하자는 정치권의 정국수습책을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최순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정국수습책으로 거국중립내각을 논의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야당과의 상의 절차 등을 거치지 않은 채 개각을 단행해 거국중립내각 수용 불가라는 외형을 갖췄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김 총리 내정자가 중립내각을 꾸릴 것으로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야당 등은 개각 몇 분 전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로부터 개각 사실을 통보받은 후 긴급회의를 하는 등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김 총리 후보자는 과거 참여정부 당시 정책실장을 지냈고, 국민의당 차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인사라는 점 등이 총리 발탁에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절차적인 측면에서 정치권에서 주장했던 국회 주도의 총리 임명 절차가 빠진 채로 진행됐다는 점과 국회가 여소야대 국면이라는 점, 새누리당의 내분이 격화된 점 등을 감안하면 총리 임명동의안이 청와대 기대처럼 국회를 쉽게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애초 더불어민주당은 거국중립내각과 관련해 "이번주 내내 비상의총을 통해 빠르면 다음주 중에는 거국중립내각에 대한 입장이 정리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당간, 차기 대권 후보군간 입장 차이로 혼선을 빚었던 거국중립내각과 관련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겠다고 시한을 밝혔다. 하지만 이처럼 정치권에서 깊은 고민을 했던 거국중립내각이 이번 개각으로 거부됨에 따라 더 이상 논의를 할 필요성이 사라지게 됐다.
김 총리 내정자가 책임총리제에 해당하는지도 논란이다. 개각과 관련된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김 총리 후보자는 거국중립내각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정국수습책이었던 책임총리로 보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개각과 관련해 청와대는 김 총리에게 예전의 총리와 전혀 다른 방대한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명확한 언급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개각에서도 제한적인 임명 제청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개각에 담긴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김 총리 후보자가 추천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에 대해서는 이같은 언급이 없다. 앞서 김종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거국중립내각 총리의 역할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총리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언급한 바 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현재의 총체적 난국 상황을 인사정국으로 돌파하려는 것으로 보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 총리 내정자에 대한 야권의 반발이 거세게 지속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 내정자가 노무현 정부 시절 정책실장을 역임한 데다 국민의당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야권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총리 내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당분간 청와대와 야당의 대립은 깊어질 공산이 크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