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놈이 중학교에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인 동아리였다. 창립회원이 벌써 열댓 명이나 되고, 회장단까지 구성한 터였다. 수학과 과학을 활용한 축제를 하고, 저널도 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름을 짓겠다며 고심하기에 부모가 한마디 거든다는 것이, 모처럼 ‘교육적인’대화로 이어졌다. 그날 저녁 식탁에는 가우스부터 오일러, 튜링에 내쉬까지 수학사·과학사의 유명짜한 천재들의 이름이 대거 소환됐다.
한동안 잊고 있다 문득 궁금해 어찌 돼 가냐 물으니, 동아리가 깨졌단다. 아니 엊그제 동 뜨더니 얼마나 됐다고. 만들자마자 깨지게 된 연유는 이랬다. 아이는 처음에 이른바 수학귀신, 과학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친구들을 모았단다. 따로 성적을 매기지 않아도, 저희들끼리는 선수들을 아는 모양이었다. 서로 회장을 하고 싶은 나머지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첫 고비는 무사히 넘겼단다. 공동회장에 공동서기를 두고, 행사마다 담당자를 정하는 식으로 최대한 많은 자리를 만들어 권한을 나누기로 했다는 거다. 임기는 한 학기, 유임 없이 권력을 넘기기로 하면서 권력분배 이슈는 해결됐다.
문제는 회원모집 방법이었다. 큰놈은 탁월하지는 않더라도 두 과목을 좋아하고 문제를 푸는 데 관심 있는 친구들이라면 다 끼워주고 싶어 했다. 창립멤버들을 중심으로 학년 내 최대 동아리를 만든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친구 둘이 소수정예로 가자는 의견을 고수했다는 거다. 심지어 필기시험을 보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논쟁 끝에 두 친구들은 다음 회합에 나타나지 않았다.
큰놈은 넘치는 테스토스테론을 어쩌지 못하는, 수컷들의 사춘기에 입문하는 중이었다. 평소엔 멀쩡한 것 같다가도 화가 나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분란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고, 구성원들의 이견을 합리적으로 추스르는 것도 리더의 자질 중 하나일 터다. 허나 아쉽게도 녀석은 아직 성숙한 리더는 아니었다.
남은 멤버가 대다수였으므로 조직을 정비하고 모두에게 열린 클럽으로 동아리를 확장하면 좋았을 텐데, 대신 녀석이 택한 방법은 본인의 탈퇴였다. 심지어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 핵심멤버 하나와 동반탈퇴를 해버렸다. 최초 제안자가 사라진 동아리는 해체되고 말았다.
사연을 듣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내 새끼의 미성숙에도 실망했지만, 동기생들을 시험으로 선발하겠다는 몇몇의 발상에 놀라서였기도 했다. 비슷한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면서도, 그 녀석들이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엘리트주의가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자연히 한창 열중하고 있는 과학모임 생각이 났다. ‘ESC(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라는 조직이다. 이백여 명의 회원들이 과학적 합리성에 기반해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해보자는 생각들을 나누고 있다. 나는 과학자도 공학자도 기술인도 아니고, 박사도 교수도 연구원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울리게 된 건, 모임이 ‘과학기술인’이라는 느슨한 이름으로 회원자격을 열어두고 있는 덕분이었다.
한때의 과학영재이자 꿈을 이루지 못한 ‘이무기’로서, 나는 여전히 과학기술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 진짜 박사, 진짜 과학자들과 나누는 대화들은 엄청난 영감을 준다. 과학기술의 대중화가 가진 함정과 한계들에 대해 모르지 않지만, 나는 수학과 과학의 문턱이 더 낮아져야 한다고 느낀다. 더 많은 이들이 초파리를 관찰하는 흥분, 미적분을 푸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시험이나 성적과 무관한 순정한 기쁨이 거기 있을 터다.
고도로 훈련된 엘리트들이 극단적인 학문적 엑설런시를 추구하는 것과 별개로, 수학과 과학을 저잣거리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건 특별한 재능이다. 나는 그 재능을 가진 이들을 ‘무당’이라 부른다. 비과학적인 존재의 이름을 빌려 미안하지만,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트랜스’로서 달리 비견할 말이 없다고 여겨서다. 그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떤 인문사회적 결정도 똑바로 하기 어려운 오늘날 꼭 필요한 존재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해 기꺼이 몸을 낮춘 그들에게 축복을.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