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기하영 기자]"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사람들의 손에 다시 아버지를 닿게 하고 싶지 않아요. 가족은 부검을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28일 법원이 고(故) 백남기씨에 대한 부검 영장을 발부하자 유족 대표로 기자회견에 나선 백도라지씨는 이 같이 말했다. 김영호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 역시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은 사인이 명확한 만큼 필요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 없다"며 부검거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이러한 유족의 의사를 무시한 채 백씨의 시신을 부검하기 위해 두 번이나 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25일 한 차례 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되자 내용을 보강해 이틀 뒤 재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을 언급하며 이례적으로 유족과의 충분한 협의를 하라는 단서도 달았다.
이날 백씨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는 5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모여 법원의 영장 발부 결정을 기다렸다. 저녁 8시 영장발부 후에는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 장례식장 곳곳이 시민들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영장 발부 소식에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은박돗자리를 깔고 담요를 서로에게 건네며 차분한 분위기 속에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다. 경찰은 이날 영장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민들은 "언제 경찰이 올지 모른다. 끝까지 남아 백남기씨 곁을 지킬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후 7시에 열린 촛불문화제에서도 이러한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백남기라는 이름은 아프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묶어주는 끈"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유가족 '준영 엄마'(임영애씨)는 "사랑하는 이의 억울함을 풀고 편하게 보내드리는 것이 남은 자의 어려움"이라며 "자식들이 원하는 마지막 효도를 할 수 있도록 부검 영장을 철회하고 특검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백씨가 사망한지 오늘로 닷새째다. 부검 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백씨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지금도 빈소를 지키고 있다. 물대포에 맞아 317일 동안 중태에 빠졌다 사망한 백씨 유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게 그리 힘든 일일까. 망자(亡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려는 이들의 목소리에 울림이 있다.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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