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경북 경주시에서 관측사상 최고인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지진 발생시 건축물의 안전을 담보하는 내진설계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국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축물은 33% 수준에 지나지 않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뒤늦은 제도정비와 예산부족으로 갈길은 먼 상황이다.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건축법상 내진설계를 해야하는 건축물 143만9549동 가운데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47만5335동으로 내진율이 33%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학생들이 머무는 교육시설의 내진설계율도 낮은 편이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확보한 '교육기관 건물 내진 적용현황'에 따르면 대상 건물 3만5382동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24.4%인 8640동에 그쳤다. 특히 초·중·고등학교 건물을 포함한 교육기관은 내진설계를 적용하지 않은 건물이 76%인 2만5136동에 그쳤다.
이처럼 내진설계 비율이 낮은 이유로는 비교적 낮은 지진빈도와 급속한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제도미비가 꼽힌다. 200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지난 1978년 발생한 홍성지진(규모 5.0)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중·대형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진이 잦은 일본과 달리 우리 정부가 내진설계에 무관심했던 이유다.
제도상의 미비점도 적지 않다. 국내 건축물에 내진설계가 의무화 된 것은 정부수립 후 40년이 지난 1988년이었다. 이 조차도 6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의 건축물에만 해당되는 규정이었고, 2015년이 돼서야 3층 이상, 연면적 500㎡의 건축물로 규정이 강화됐다.
그러나 1988년 이전에 건축된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지진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전 의원에 따르면 비교적 최근 도시가 조성된 세종·울산시의 경우 내진설계율이 각각 50%, 41%에 달했지만, 도시 형성시점이 상대적으로 이른 서울과 부산은 각각 27.2%와 25.8%로 현격히 낮은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내진설계율 보완을 위한 길은 갈 길이 멀다. 2000년대 이후 지진이 연평균 40건대로 늘면서 내진설계 문제가 해마다 국정감사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예산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예컨대 정부는 2045년까지 2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교육시설 7000여동에 추가로 내진설계를 적용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계획이 30년 동안 그대로 적용되더라도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교육시설은 1만6000여동으로 전체 46%에 이른다.
이에 따라 추석 후 진행될 국정감사와 예산편성 정국에서는 잦아지는 지진에 따른 내진설계 확대 여부도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전 의원은 "올해에만 우리나라에서 30여차례의 지진이 발생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라고 할 수 없다"며 "건축물에 대한 내진확보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