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법정관리 중인 한진해운을 지원하는 안건을 논의하는 대한항공 이사회가 9일 이틀째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한항공의 긴급수혈 제안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였던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사태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한진해운 최대주주인 대한항공은 이날 오전 긴급 이사회를 열어 해외터미널 지분을 담보로 한진해운에 600억원을 대출해주는 안건을 논의했으나 전날에 이어 이틀째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한진해운 자금지원과 관련해 회사와 사외이사진 간에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으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내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조양호 회장의 사재 출연은 다음주 초에 집행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은 8일에도 이사회를 열어 한진해운 지원 방안을 논의했으나 이사진들의 반대에 부딪쳐 불발됐다. 부채비율이 1000%가 넘는 대한항공이 회생여부가 불투명한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하면 주주들로부터 배임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진그룹 차원의 자금지원이 제동이 걸리면서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 파장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대상선이 이날 밤 11시부터 대체선박을 출항하지만, 전세계 해상에 표류하고 있는 15조원 규모의 화물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진해운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기준으로 운항 선박 128척 중 89척(컨테이너선 73척ㆍ벌크선 16척)이 26개국 51개 항만에서 정상운항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선박에는 8000여곳의 화주의 40만개의 컨테이너, 약 140억달러(약 15조원)의 화물이 실려 있다. 이미 220여개 수출 기업의 1억달러 어치 화물이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즈리스트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빌려서 운영하던 선박인 한진 캘리포니아호가 최근 호주 보타니항에서 압류됐다. 이로써 압류된 한진해운 선박은 한진 캘리포니아호를 비롯해 싱가포르, 중국 상하이ㆍ선전 등 총 4척이다. 미국, 일본, 영국에서는 한진해운이 선박 압류를 막기 위한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을 신청해 발효됐다. 싱가포르와 독일, 네덜란드는 곧 신청할 예정이다.
해운업계는 정부와 채권단, 한진그룹의 추가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수출·물류대란이 장기화되고 이달 말부터 선적이 예정된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이후 대규모 세일시즌)를 시작으로 한 연말연시 특수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71개 컨테이너 노선 가운데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28%에 이른다. 미국의 태평양 연안 물동량 가운데 한진해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8%다.
미국에서도 다음달 추수감사절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연중 최대 쇼핑시즌에 한진해운 사태가 악재로 작용할 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소매업경영자협회는 상무부와 연방해사위원회(FMC)에 서한을 보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물류 차질이 심각하다며 한국 정부, 항만 등과 협의해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미국 상무부 당국자들도 긴급히 방한해 우리 정부 측과 만나 물류 차질 해소방안을 모색한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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