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오염원 못찾아 공포 확산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국내에서 콜레라가 15년 만에 발생했다. 거제와 부산에서 콜레라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감염병 공포와 함께 졸지에 콜레라로 큰 타격을 입은 이들이 있다. 횟집과 초밥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1~3번째 콜레라 환자는 거제지역에서 해산물을 먹은 뒤 감염된 것으로 보건당국은 발표했다. 부산지역에서 확인된 네 번째 환자는 한 식당에서 초밥을 먹은 이후 설사증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횟집과 초밥집이 직격탄을 맞았다.
거제지역에는 현재 300여 곳의 횟집이 있다. 콜레라 후폭풍이 거세다. 거제시청의 한 관계자는 "손님이 없어 횟집의 80%가 문을 닫은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정확한 수치는 아직 파악되지 못했는데 이번 콜레라 사태로 약 100억 원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제지역에 있는 한 콘도의 경우 평일에도 예약률이 100%를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콜레라 사태이후 예약을 취소하는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관광객이 그만큼 줄었다는 거다. 이 관계자는 "거제하면 '바다와 회'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콜레라 사태로 완전히 무너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급기야 "거제 해산물은 안전하다"며 설득하기에 나섰다.
질병관리본부 또한 잦은 민원과 항의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횟집 등에 본의 아니게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콜레라로 직격탄을 맞은 식당 주인들이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조은희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장은 "수많은 항의 전화가 걸려온다"며 "항의 전화에 위로의 말을 전하는데 이제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확한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아 국민들의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거제의 662곳 지점에서 해수를 검사했다. 8일 거제시 대계항 해수에서 콜레라 균이 검출됐다. 662곳을 조사했는데 고작 한 곳에서, 그것도 적은 양의 콜레라 균이 나왔다. 1~3번째 환자가 대계항의 해수로 감염된 것인지는 더 조사해 봐야 한다. 해외감염이 확실시되는 네 번째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필리핀에서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7차 유행까지 이어졌던 콜레라=콜레라는 19세기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적으로 유행한 감염병이다. 지금까지 총 일곱 차례 세계적 유행이 있었다. 1816년에서 1826년까지 1차 유행을 시작으로 ▲2차(1829~1851년) ▲3차(1852~1860년) ▲4차(1863~1875) ▲5차(1881~1896) ▲6차(1899~1923) ▲7차(1961~1975)의 대유행을 거쳤다.
1961년에는 아시아를 시작으로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까지 전파됐다. 1991년 콜레라 유행으로 남아메리카 10개국에서 39만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다. 1997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4만7000명 이상이 보고됐다. 아직 콜레라는 끝나지 않았다. 2013년에 전 세계 47개국에서 사망자 2012명을 포함해 12만9064명이 보고됐다.
우리나라도 1980년(145명), 1991년(113명), 1995년(68명)에 콜레라 유행이 있었다. 2001년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 유행이 일면서 162명(확진환자 142명)의 환자가 발생한 바 있다. 2003년 이후 해외유입환자가 대부분이었다. 올해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면서 2001년 이후 15년 만에 국내에서 콜레라가 발생한 것이다.
◆콜레라는 무엇=콜레라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이중 콜레라 독소를 발현하는 균체 항원형은 O1, O27, O37, O139 네 가지가 있다. 특히 O1과 O139형은 집단 유행을 일으킨다. 여기에 O1과 O139형은 물속에서 장시간 생존이 가능하다. 국내에서 발생한 1~3번째 환자가 이 유형에 속했다. 전파경로는 다양하다. 선진국의 경우 어패류 등의 해산물 식품매개로 전파된다. 개발도상국가의 경우 콜레라균에 감염된 사람의 분변처리가 잘 되지 않아 수로, 지하수, 식수 등이 오염돼 주변 사람들에게 옮기는 경우가 많다. 아주 드물게는 환자 또는 병원체보유자의 대변이나 구토물과 직접 접촉해 감염이 일어난다.
잠복기는 6시간~5일 정도인데 평균 2~3일로 보고 있다. 콜레라에 감염되면 무증상이 많다. 증세가 심한 경우는 5~10% 정도이다. 10명중 1명 정도가 콜레라 감염으로 고통을 받는 셈이다. 복통 없이 쌀뜨물 같은 심한 수양성 설사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가끔 구토를 하고 탈수, 저혈량성 쇼크 등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열은 없고 전해질 불균형으로 근육경련이 일어난다.
◆올해 발생한 국내 콜레라 원인은=현재까지 역학조사 결과 1~3번째 콜레라 환자는 거제지역의 해산물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오염된 해수가 '콜레라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부산에서 확인된 네 번째 환자는 1~3번째 환자와 유전자형이 달랐다. 필리핀에서 발생한 콜레라와 99% 유전자형이 일치했다. 콜레라 발병직전 여행경험이 있어 필리핀에서 감염된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문제는 아직 특정 오염원을 지목하지 못하는데 있다.
조은희 과장은 "현재 거제 지역곳곳의 해수를 검사하고 있다"며 "넓은 바다에서 오염원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계항에서 채취한 해수에서 콜레라 균이 발견됐는데 전체 바다가 오염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2일 첫 환자(남, 59세)가 발생한 이후 25일 두 번째 환자(여, 73세), 30일 세 번째 환자(남, 64세)가 발생했다. 1~3번째 환자의 유전자지문감식 결과 같은 형으로 나타났다. 이어 부산에서 네 번째 환자(남, 46세)가 지난 3일 확인됐다. 네 번째 환자의 콜레라 유전자지문을 분석한 결과 1~3번째 환자와 달랐다.
조은희 과장은 "정확한 역학조사와 신속한 정보 전파로 콜레라에 대한 공포심을 줄이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조만간 이번 콜레라에 대한 종합적 질문과 답변(Q&A)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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