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설 2시간 전 국회 이발관에서 '예행연습'
31년만의 '거위의 꿈' 대표연설로 현실화
박근혜 대통령 향한 朴心 드러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언급, 박 대통령 지지 요청 위한 것
민감한 현안은 우회, 에둘러 야당 비판
누리꾼의 '입'(댓글) 통한 민심정치 선보여
향후 당면 과제는 청와대와의 관계 재정립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의 1층 이발관. 문밖으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셀프 국회개혁 대신 국민주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당찬 목소리였다. 2시간 뒤 본회의장에서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나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예행 연습'이었다
그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채비를 갖췄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옹호하고 정치개혁을 강조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던 여당 대표경선 후보였을 따름이다.
호남출신에 이렇다할 배경 없이 당직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 대표는 스스로 '무(無)수저'라 부른다. 말단 당 사무처 직원에서 출발해 집권당 대표까지 31년 만에 16계단을 밟아 오른 경력 때문이다.
이런 이 대표가 이날 새누리당 의원들을 대변해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나섰다. 이날 연설은 변치 않는 '박심'(朴心)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 등 민감한 부분은 되도록 연설에서 다루려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설은 '청와대'와 '애국심'에 방점을 찍었다. 누리꾼들의 댓글을 거론하면서 민심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청와대를 향해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국민이 뽑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던 것을 사과드린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절 국정에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고 잇따라 발언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 이 순간까지 사실상 대선불복 형태의 국정 반대, 국가 원수에 대한 막말이 이어지고 있다"며 야권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공세를 비난했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당 대표가 목숨 걸고 앞장서 지키겠다"고 다짐했지만 방점은 대한민국이 아닌 박근혜 정부에 찍힌 듯 보였다.
그에게 야당의 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견제는 "대선 불복의 나쁜 관행"일 뿐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화끈하게 한 번 도와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반면 '우병우 사태'와 '사드 배치 결정 과정' 등 최근 국정 현안에 대해선 침묵했다. 연설의 속내를 뒤집어보면 야당과 정 의장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 가득했다.
비판의 도구로 쓰인 건 누리꾼들의 댓글이었다. 앞서 그는 “연설문의 최대 자문위원은 네티즌 댓글”이라며 “보좌진에게 민심을 알 수 있는 댓글을 최대한 많이 뽑아달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댓글을 바탕으로 연설문을 쓰고 억울한 사람들의 민의를 대변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의 연설은 벌써부터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다. 칼끝이 지나치게 야당을 겨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이 대표의 당면 과제도 청와대와의 관계 재정립이 됐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란 꼬리표를 떼고 자신이 구상한 정치개혁과 민생행보를 어떻게 실천해 나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란 얘기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