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한진해운이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키로하면서 하면서 한진해운은 물론 한국 해운산업에 대(大)격변의 시기가 도래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사실상 파산의 전단계라는 점에서 한진해운의 몰락은 한진그룹에는 육해공 수송제국의 3대 축에서 한 축이 붕괴됨을 의미하고 한국 해운산업으로서는 1위 국적선사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국내 국적선사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쌍두마차 체제에서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된 현대상선 1사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한진해운은 어떤 회사…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대형 해운사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1977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설립해 현대상선과 함께 국내 해운 업계를 양분해 왔다. 한진해운은 1988년 정부가 1949년 설립한 대한해운공사가 전신이던 '대한선주'를 합병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150여척의 선박으로 전 세계 70여개 정기 항로를 운영하여 연간 1억t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1996년에는 한국 최초로 세계 최대형, 최고속의 5300TEU급의 컨테이너선을 취항해 주목받았고 해운업이 호황이던 2000년 초반까지도 5750TEU급의 컨테이너선을 잇달아 인수하며 순항했다. 2005년에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인 8000TEU급의 한진 보스톤호와 마이애미호, 볼티모어호 등을 연속 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업주의 3남으로 2003년 7월부터 독자경영을 해 왔던 고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한진해운호'에는 차츰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글로벌 해운업 장기침체 등과 맞물리며 회사의 유동성 위기는 심화됐다. 2013년에는 242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3년 연속 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은영 회장은 결국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회사 지분과 경영권을 넘기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조양호 회장은 2014년부터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고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는 등 경영정상화에 매진했다. 그러나 조양호 회장의 이러한 노력도 글로벌 해운업 불황을 타개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작년 말 기준 부채비율이 848%까지 치솟는 등 좀처럼 경영여건이 개선되지 않았다.
한진해운의 채권단은 끊임없이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한진그룹 측의 획기적인 자구책을 요구했지만 결국 채권단의 요구안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라는 벼랑 끝에 몰렸다.
◆해운대국 韓, 저유가에 업황부진으로 몰락= 한국은 전 세계 약 300개의 상장 해운선사 중 매출 규모 기준으로 10위 안에 드는 해운사를 두 곳(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나 가지고 있다. 또한 상장 해운사 6개 중 5개 회사가 매출액 기준 상위 100위 안에 들고, 4개 회사가 50위 안에 드는 해운대국이다. 한국 해운 업체 중 매출액 기준으로 가장 순위가 높은 한진해운의 경우 순위가 전 세계 7위, 현대상선도 8위 수준으로 매우 높다. 연 매출 50억달러 이상의 상장 해운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11개가 있는데, 한진해운은 80억달러 이상, 현대상선은 70억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외형에 비해 내실은 취약하다. 한국 1위 해운 업체인 한진해운은 2011년 이후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상선도 만성적인 적자를 냈다. 대한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매각 이후 조기졸업했으며, 팬오션은 법정관리 중에 있다가 하림그룹에 인수됐다. 대한해운과 KSS해운, 흥아해운 정도만이 안정적인 경영을 해 오고 있다.
◆고비용 용선에 발목잡힌 韓해운=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해운 업체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손실을 회복한 업체들도 많다. 반면 한국 업체들의 경우 회복 정도가 상당히 낮았다. 해운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개별 업체의 영업전략이 업황에 부합하지 않고 국가 차원의 해운업 지원이 미미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 대형선사들의 경우 2009년부터 고유가 시기에 체결한 선박의 용선계약을 해약하고 용선기한 이전에 선박을 반환해 조기반선 손실을 반영한 시기에는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이후 손실 이상의 이익을 회복했다.
덴마크의 머스크사는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 왔다. 2011년에 총 20척의 1만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를 발주했고 이는 2년 뒤부터 인도되기 시작했다. 머스크는 규모의 경제화를 통해 저유가로 운임이 하락했어도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반면 한국 해운 업체들의 경우 고비용 용선계약을 이행하다가 장기 적자에 직면하게 되었다. 선가가 낮을 때 경쟁 선사들이 원가경쟁력 있는 선박을 발주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 업체들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수익성 높은 사업부를 매각하고, 선박도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해운 강국들은 해운 살리기 韓은 해운 손 떼기= 해운 업계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구조조정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보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 침체 국면을 맞은 2008~2009년 이후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유럽의 해운 강국들은 정부의 주도로 국책금융기관과 공공펀드가 적극적으로 동원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프랑스 해운사인 CMA CGM은 2009년 상반기에만 5억1500만달러의 적자를 내고 9월 유동성 위기에 몰려 파산위기에 몰렸었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국부펀드인 전략투자기금(FGSI)을 동원해 CMA CGM에 1억5000만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했고, 15억달러 규모의 은행 대출을 보증해 줌으로써 위기를 벗어나도록 도왔다. 동시에 보유한 선박의 일부나 항만 지분 등 자산의 매각과 비용 감축 등의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독일의 대표 해운사인 하팍로이드도 마찬가지로 위기를 맞았던 2009년 구조조정을 하면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다. 당시 하팍로이드는 인원 감축과 임금 삭감 외에도 128척 가운데 절반에 달하던 용선의 비중을 대폭 줄이는 등의 체질개선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독일 정부는 12억유로의 90% 정부 대출보증을 제공했고, 함부르크시가 7억5000만유로를 아예 현금으로 지원했다. 독일 정책금융기관인 독일부흥은행(KfW)은 같은 해 중소 해운사의 지원을 위해 특별프로그램을 도입, 150억유로의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해운사로 꼽히는 머스크라인을 보유한 덴마크에서도 정부기관을 통한 지원이 이뤄졌다. 중국도 금융위기 이후 중국공상은행을 통해 해운 업계에 150억달러 규모의 신용대출을 제공했다. 중국은 공상은행의 지원과 함께 해운선사의 대대적인 통폐합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정부가 '해운산업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았고, 선박펀드를 조성하는 등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지원은 실질적인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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