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발의 차이였다. 허겁지겁 뛰어가 버튼을 눌러댔지만 한발 늦었다. 1층, 2층, 3층… 낙오자를 버려둔 채 엘리베이터는 무심히 상승해버렸다. 며칠전 퇴근 길이었다. 살다보면 엘리베이터를 놓치는 일은 일상사다. 살다보면 간발의 차이는 다반사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32도. 1층 아파트 복도에 달린 온도계는 숨이 막혔다. 7시10분. 온도계 옆의 벽시계는 말문이 막혔다. 두 숫자를 번갈아보는데 기가 막혔다. 오늘도 열대야인가.
1초만 빨랐더라면, 그랬다면 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집에 도착했을텐데.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엘리베이터 표시등을 째려봤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등 뒤로는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베이터는 9층, 10층을 지나 12층, 13층으로 상승 중이다. 저러다 20층 꼭대기까지? 설마? 그러나, 그렇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엘리베이터는 기어코 20층을 찍고서야 되돌아오는데 19층, 18층, 17층… 하강속도는 왜 저리 더딘지. 20층 주민은 왜 그리 얄미운지. 8층 넘는 아파트는 왜 지어서 이 모양인지.
다음날 새벽 출근길, 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5층에 한번, 3층에 다시 한번. 5층 할아버지는 새벽산책을 가는 모양이다. 3층 아주머니는 강아지 배변을 시키려는 본새다. 직행을 원했건만 그 바람에 완행이 되고 말았다. 새벽부터 푹푹 찌는데 그냥 집에들 계시지. 8층 아래 아파트는 왜 지어서 이 모양인지. 또 속으로 궁시렁대면서 눈알을 굴리는데 순간 뜨끔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옹졸하고 인색한 눈빛과 마주쳐서다. 내 안의 지독한 이기심과 맞닥뜨려서다.
신문들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콜레라와 식중독 따위의 후진국병이 창궐한다고 떠들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이기주의가 펄펄 끓는다. 그 바람에 이타심이 슬슬 녹는다. 진화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우리는 모두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처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타심은 이기심에 비해 열성이다. 이타심은 이기심보다 적은 보수를 남기기 때문에 적자생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타심을 실현(해야)하는 것은 이타적인 공동체가 이기적인 공동체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작은 양보와 연민과 사랑과 봉사가 기적을 행한다는 사실을 익히 체험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기적으로 태어난 우리는 이타심을 배우고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조언이다. 연민과 이타심의 대가인 제임스 도티 박사도 최근 펴낸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에서 "규칙적인 명상과 집중으로 뇌와 심장의 잠재력을 활용하면 누구나 이타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만 저들의 가르침에 깊이 감동하면서도 정작 실천으로 옮기기 어려운 것은, 우리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취약함에 폭염마저 가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폭염의 끝이 보인다. 덩달아 이타심도 회복될 것이다. 앞으론 기꺼이 엘리베이터도 공유할 것이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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