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쓰면 싸게 많이 쓰면 비싸게"
누진제 대원칙 지키며 개선 어려워
근본적 해결은 사회적 합의에 달려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전기를 많이 쓰면서 요금을 적게 내는 누진제 개정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력수급 관리 차원에서 어느 단계의 요금을 낮추면 다른 곳의 요금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74년 12월 누진제를 신설했다. 적게 쓸수록 적은 요금을 내고, 많이 사용할수록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등 에너지 자원이 풍족한 나라와는 다른 상황을 고려해 도입, 유지돼 왔다.
그러나 에어컨이나 김치냉장고 등 새로운 가전기기가 등장하면서 오래된 누진제를 개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올해는 폭염이 지속되면서 늘어난 냉방 수요로 인해 누진제 개선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누진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는 점이다. '에너지 절약'과 '저소득층 보호'라는 누진제의 도입 취지를 지키면서 가격이 급등하지 않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과제다.
현행 누진제는 모두 6단계로 나뉘어 단계별로 누적으로 계산되고 있다. 전력사용량에 따라 1단계(100㎾h 이하)면 기본요금 410원에 ㎾h당 60.7원을 책정한다. 상위 단계로 갈수록 계산은 복잡해진다. 2단계(101~200㎾h)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910원에 1~100㎾h에는 60.7원, 101㎾h 초과분에는 125.9원을 각각 계산해야 한다.
만약 가정에서 한 달에 전력을 150㎾h 사용했다면 2단계 기본요금인 910원과 1단계인 100㎾h 사용료 6070원, 1단계 초과분인 50㎾h에 대한 요금 6295원(50×125.9원)을 더한 1만3275원을 내야 한다.
500㎾h를 초과 사용하면 기본요금 1만2940원을 포함해, 1~500㎾h 사용분에 대한 단계별 전력요금에 500㎾h 초과분에 대해 ㎾h당 709.5원을 계산해 더한 요금이 부과된다.
현행 11.7배에 육박하는 누진율을 낮추려면 낮은 단계 가격을 높이거나 높은 단계 가격을 낮춰야 한다.
'누진 3단계, 누진율 1.4배'인 일본이 이러한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일본은 평소 우리나라에 비해 전기요금을 많이 내는 반면 여름철에 요금이 덜 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누진제 구조상 낮은 단계 요금을 높이게 되면 모든 가구의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 반면 높은 단계 가격을 낮추면 전력 과소비층은 상대적으로 낮은 요금인상률을 적용받게 된다.
누진제 전체 단계의 요금 인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요금 인하로 최대전력 수요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한 설비용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만큼 발전소를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여름·겨울철 일시적인 최대전력 수요 급증에 대비해 평소에 노는 발전소를 짓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올해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이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돼야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일부에서는 최근 저유가 상황을 감안해 전기요금과 유가를 연동해야 한다는 의견도 거론되고 있다. 전력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한국전력이 저유가에 이익을 많이 본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저유가 시기에는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지만 고유가 시기에는 가정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회적인 합의”라며 “일시적인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요금의 전반적인 인상을 감내할 것인지 국민적인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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