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의 흐름이 달라졌다. 1980년대 이후 8% 가깝게 성장해 온 세계무역이 최근 수년간 2% 성장에 미치지 못하고 지난해는 11% 넘게 감소했다. 세계무역의 갑작스러운 추락은 세계경제의 장기 저성장, 중국의 성장 전략 변화, 국제유가 하락이 원인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에 집착하면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변화를 놓치기 쉽다.바로 디지털경제의 급성장이다. 디지털경제는 인터넷인프라, 기업내 전자적 업무, 전자상거래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국내외 상품과 서비스 거래에 정보통신기술이 도입됨으로써 21세기 국제무역의 지각을 송두리째 바꿀 태세이다.
디지털경제는 우선 무역상품의 구성을 변화시킬 것이다. IT관련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무역이 증가하고, 개인들이 가상재화를 가상의 마켓에서 구입하거나 실제 상품이 아닌 데이터의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둘째, 그동안 비교역재로 인식되었던 연구, 컨설팅, 회계, 정보처리 등 서비스 분야의 국경간 거래가 IT기술에 의해 확대된다. 셋째, B2C거래가 늘어나면서 혁신적인 강소기업의 시대가 열리며 소규모 맞춤형 생산과 소비가 거의 동일한 지역 내에서 가능해진다. 그 결과 글로벌밸류체인(GVC)이 단축되고 생산기지형 개도국은 비교우위를 상당부분 상실하게 된다.
디지털경제로 인한 국제무역의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앞으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한 국가간 경쟁이 뜨겁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타결된 TPP협정에 이미 개인정보보호, 국경간 정보이동, 디지털상품에 대한 비차별대우 등을 규정하는 전자상거래 챕터를 별도로 두어 디지털시대의 국제무역 규범을 주도하기 위한 포석을 끝냈다. 중국도 전자상거래를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시장진입, 세제혜택, 해외상장 간소화, 인재육성 등을 지원하는 선성장, 후관리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OECD 34개 회원국 중 27개국이 디지털발전정책을 수립 또는 개정하였고 스위스, 오스트리아도 현재 검토 중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하드웨어는 세계 상위권이지만, ICT서비스, 글로벌전자상거래 플랫폼, SNS, 스마트미디어 등 세계와 소통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세계수준에 크게 뒤진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알리바바, 아마존은 월평균 이용객이 각각 4억명, 1.9억명인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최고 8백만명 안쪽에 머물러있다.
디지털경제 시대의 무역패러다임 전환에 뒤지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 첫째,우리 산업과 무역의 비교우위 구조가 급격히 변화할 수 있으므로 디지털경제의 흐름에 맞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존의 중후장대형 주력산업에서 고부가치형 소비재, 디지털재화, 문화컨텐츠, 서비스의 수출산업화가 필요하다. 둘째, 무역을 촉진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 디지털 능력이 있는 인적자원의 확보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디지털시대 경쟁우위는 혁신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셋째, 규제완화와 법 제도 개선을 시장개방, 혁신유도를 통해 강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넷째, 디지털시대의 통상정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TPP 등 전자상거래 분야에 대해 선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디지털 재산권보호, 소비자보호, 보안, 국가간 데이터 이동 등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디지털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오히려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조류를 잘 활용하면 한국무역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디지털경제의 속성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잘 맞는 속성이 많다는 점이다. 디지털시대에는 기업이 새로운 흐름에 빠르게 적응하고 혁신해 나갈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김극수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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