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비행기로 이동한 왕이·리용호...시종일관 화기애애
-사드 불만 턱 괴고 손사래...냉랭한 한·중회담 대조적
[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최악으로 치달았던 북ㆍ중 관계의 회복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강한 대북제재를 이어 온 우리 외교 당국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눈치만 볼뿐 마땅한 '외교적 카드'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ASEAN)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가 열리고 있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5일 낮(이하 현지시간) 12시쯤부터 1시간 가량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 이번 북ㆍ중 외교장관 회담은 2년만으로 리 외무상의 첫 다자외교 데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현재까지 평가는 '성공적'이다.
양 측은 공백기가 무색하게 회담 전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기다리고 있던 왕 부장이 회의장 밖까지 나와 리 외무상을 맞아 악수했다.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리 외무상의 등에 손을 올리기도 했다. 회의장 내에서 리 외무상과 왕 부장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웃고 있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이 같은 모습은 전날 오후 같은 비행편인 중국 동방항공 여객기를 타고 비엔티안 와타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예고됐다. 한 외교전문가는 "북ㆍ중 외교수장이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같은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이 장면이 주는 외교적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북ㆍ중 외교수장 간 만남은 전날 냉랭했던 한ㆍ중 회담과 대비됐다. 24일 밤 라오스 비엔티안의 호텔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1시간 가량 한ㆍ중 외교장관회담을 가진 왕 부장은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ㆍ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최근 한국 측의 행위는 쌍방(양국)의 호상(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 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그 동안 불편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번 회담은 한ㆍ미의 지난 8일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처음이다. 왕 부장은 윤 장관의 발언을 듣던 중 불만이 있는 듯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괸 채로 발언을 듣는 등의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담겼다.
이제 국제사회의 이목은 26일 예정된 ARF 외교장관회의에 쏠렸다. 우리 외교 당국도 친밀해진 북ㆍ중 관계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셈법이 복잡해졌다. 우려했던 대북제재 균열을 막기 위한 외교적 총력을 쏟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사실상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 한 중국을 이해시키거나 달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더불어 미ㆍ중 간 격렬한 갈등을 낳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확실한 입장을 물을 경우 더욱 난처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아가 북 측도 더 이상 조용한 외교행보를 이어가지 않을 전망이다. 리 외무상은 25일 저녁 비엔티안의 호텔에서 열린 라오스 외교장관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한 뒤 나오는 길에 "내일은 말씀 들을 수 있을까요"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웃음과 함께 한 손을 들며 "네"라고 답했다. 적극적인 외교행보가 예상되면서 우리 외교 당국은 그 발언 수위에 촉각을 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례를 보면 ARF 당일 북한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의 주장을 밝혀왔다.
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