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은 있지만 정은 없는 곳…삼각김밥등 가성비 최강, '저렴쇼핑족'도 잡아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 과도한 서비스를 하지 않아도, 눈치보지 않고 마음대로 골라도 된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기본적인 예의만 지키다면 그걸로 족하다. 누구에게는 놀이터가, 누구에게는 쉼터가, 또 그 누구에게는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 된다. 필요한 건 대부분 있다. 단, '인간미'를 기대하면 안된다. 이곳에서만은 각자도생도 용서가 된다.
편의점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다. 분명 방금 지나쳤는데 몇 걸음 채 떼지도 않아 금새 다시 등장한다. 서울 잠실역 인근에는 반경 300m내에 10개의 편의점이 모여 있는 곳도 있다. 전국 편의점 3만 여곳(지난해 말 기준). 이른바 '편의점 사회'가 도래했다.
◆'불필요한 말은 딱 질색' 편의로운 세상
편의점에서는 서로 아는 척을 할 이유도, 불필요한 대화를 할 필요도 없다.
평일 늦은 오후 종로구 혜화동의 한 편의점, 2시간 동안 10여 명의 손님이 다녀갔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간단한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한 손님이 삼각김밥과 우유를 계산대에 가져오자, 아르바이트생은 "2050원입니다"라고 짧게 한 마디를 했고, 손님은 계산을 하고 바로 나갔다.
이 조차 할 기회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편의점에는 손님 쪽을 향해 있는 모니터가 있는데, 물건의 바코드를 찍으면 계산해야 할 가격이 뜬다.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치러야 할 돈만 재빨리 낸 뒤 발걸음을 재촉하는 손님도 꽤 있었다.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마치 똑같은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인격적인 대화는 기대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아르바이트생은 정해진 메뉴얼만 지키면 특별히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물건을 더 팔기 위한 영업도 안한다.
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박모(37)씨는 "원래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며 "편의점은 시급이 작아도 단순업무만 잘하면 되고, 감정노동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벼운 주머니들의 '취향저격'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정찰제 때문에 편의점 물건이 상대적으로 고가라는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특히 편의점을 자주 찾는 2030세대 및 1인가구에게 편의점은 '가성비 최고의 공간'이다.
가수 김도균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편의점 포인트 90만원을 적립했다고 공개해 화제가 됐다.
체인사업화가 되면서 각종 카드 할인 제도와 행사를 하고 있는 편의점은 제휴 카드, 통신 카드, 모바일 상품권, 모바일 기프티콘 등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유리하다. 또 1인가구의 경우, 대량으로 구매해야 하는 대형마트와 달리 필요한 만큼 소량으로 살 수 있어 돈까지 아낄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 '편의점 평론가'로 유명한 채다인씨는 "도시락이나 삼각김밥같은 푸드상품은 확실히 가성비가 좋은 것 같다"며 "요즘 어디서 4000원에 배부르게 한끼 식사를 해결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편의점이 비싸다는 인식이 많은데, 1+1이나 증정행사를 잘 이용하면 저렴하게 쇼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구멍가게엔 있고 편의점엔 없는 것
사회학자 전상인 교수는 '편의점 사회학'에서 편의점을 도시적 삶의 패턴과 인간관계가 무엇인가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과거 동네 구멍가게가 온갖 이웃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따뜻한 정이 존재하는, 물건을 파는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면 편의점은 소통이 사라진 철저한 익명의 공간이다. 동네 소매상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매우 다르다는 뜻이다.
자취경력 7년차라는 편의점 단골 강미선(35)씨는 "어렸을 적 고향에 있던 동네슈퍼 아줌마랑은 친했다. 하지만 편의점은 그러한 친목을 기대하긴 힘든 것 같다"며 "이 동네에 산 지 오래됐지만 아르바이트생이 자주 바뀐다. 대화가 없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든다. 편하고 좋을 때도 있다. 요즘 다 바쁜데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냐"며 자리를 떴다.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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