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산 밑에 삽니다. 흔히 ‘경리단(국군재정관리단) 골목’이라 불리는 곳으로 해방촌 맞은 편 쪽입니다. 요즘 부쩍 유명해져서 주말이면 관광지 못지않게 행인이 많은 곳입니다. 남산이 북한산이나 지리산이라면 사하촌(寺下村) 언저리거나 산장여관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아, 공연히 복잡하게 말하고 있군요. 소월로 아랫마을입니다.
소월로(素月路). 남대문에서 시작하여 남산의 남쪽 산허리를 감아 도는 길, 부산이나 통영의 산복(山腹)도로를 닮은 길입니다. 아무튼, 저는 제가 사는 동네 길에 소월처럼 큰 시인의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이 무척 좋습니다. 그 길을 걷다가 외지 사람을 만나면, 이 길이 제가 사는 마을길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매주 사나흘은 그 길의 행인이 되지요. 명동이나 인사동쯤은 그리로 휘적휘적 걸어서 오갑니다.
그 길의 이름은 1984년에 붙여졌다는데, 작명의 사연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필경, 남산도서관 옆에 세워진 그의 시비에서 의미를 찾았겠지요. 1968년, 신시(新詩) 60년을 기념하여 어느 신문사가 세운 그것 말입니다. 잘 생긴 바윗돌에 '산유화'가 새겨져 있지요.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네.//산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제 눈에는 그것이 마치 저 세종로 복판에 있는 ‘도로원표(道路元標)’처럼 보입니다. 이 강산 삼천리로 뻗어나간 길들의 기준이 되는 그 표석처럼, 소월시비를 우리 현대시의 크고 작은 길들이 시작된 곳임을 말하는 표지로 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착시(錯視)일 것입니다. ‘시작된 곳’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지 몰라도, 이곳을 기점으로 한국문학이 도달한 여러 가지 성취의 이정(里程)을 짚어볼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월이 누굽니까. 그이를 빼놓고 이땅을 대표하는 시인 하나를 내세우려면, 갑론을박이 간단치 않겠지요. 그러나 소월의 가치를 정하고 한국문학사에서 그의 자리를 매기는 일에는 문학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치 않습니다. 평범한 독자들 아니 남녀노소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소박한 추천의 한마디씩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은 ‘엄마야 누나야’를 부르며 소년소녀로 자랍니다. ‘개여울’과 ‘진달래꽃’과 ‘못잊어’를 읊조리며 사랑의 연대기를 보냅니다. 어느 날 ‘세상모르고 살았’음을 깨닫고 눈물짓습니다.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자신이 ‘어쩌면 생겨나’왔는지 물어가며 사람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쯤 되는 시인이 왜 그 흔한 기념관 하나 없을까. 소월로에 ‘괴테의 집’(Goethe-Institut; 독일문화원)은 있는데 소월의 집은 어째 없을까.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의 동상도 있는 도시에, 왜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의 모습은 없을까.
제 나라 시인 하나 번듯하게 섬길 줄 모르는 나라의 문학을 지구상의 어느 나라가 관심을 가져줄까. 책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 한 작가의 수상 소식에는 왜 그리 수선스러운 걸까. 그렇다면 우리가 매년 가을에 목을 빼고 노벨문학상을 기다리는 것은 염치없는 일 아닐까.”
그런 의문들이 꼬리를 무는 끝에 익숙한 뉴스화면이 떠오릅니다. 중국에 간 우리 대통령이나 외교관들이 연설을 하거나 건배사를 할 때, 이백(李白)이나 왕유(王維) 같은 당나라 시인의 시구(詩句)를 인용하는 장면입니다. 상호간 이해력과 호감도 항목의 점수를 높여보려는 심사지요.
뒤집어보고 싶어집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 사절들 입에서 소월의 시가 흘러나오는 기자회견을 보는 상상입니다. 외국의 원수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기념관 을 방문하고 방명록에 우리 시에 대한 소감을 적는 광경입니다.
구체적인 주문을 하렵니다. 소월로에 소월 김정식(金廷湜) 씨 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산은 서울에서도 중심이 되는 곳, 사철 아름다운 곳. 통일의 시대가 와도 국토의 중심일 수 있는 곳. 거기 한국인의 심리적 정체성을 아름다운 언어의 무늬로 빛내준 시인의 기념관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소망일 것입니다.
우리 한번 그려봅시다. 꽃그늘 아래서 무명가수 한 사람이 그의 시에 붙여진 노래들을 부르고 있는 소월로의 저녁, 모여든 구경꾼들 사이에 산책 나온 김소월씨도 끼어있을 것입니다. 시인을 알아본 누군가 그를 무대 위로 모셔 올리고, 시인은 수줍은 얼굴로 사람살이의 아득함과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겠지요.
외국 관광객들은 한국인의 애틋한 정한과 다감한 심성을 아름다운 시편으로 남기고 간 시인의 체취를 느끼고 갈 것입니다.
국격(國格)도 한 뼘은 더 높아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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