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주식을 상속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경영권이 무조건 대물림되는 것은 이제 고려해 봐야 할 때다."
최근 만난 학계에 몸담고 있는 전직 관료의 말이다. 기업 오너와 2ㆍ3세들의 갑질과 탈선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영 능력이 검증 안된 자녀들에게 경영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습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일갈이었다.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꽤 진지한 고민 끝에 나온 생각이라는 부연설명도 곁들였다.
한때 '재벌'이라는 단어는 그 부정적 의미 때문에 해당 기업들이 쓰기를 껄끄러워했다. 그러나 '아줌마'라는 단어가 그렇듯 재벌이라는 말도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유명 영어사전에 보란 듯이 등재돼 있는 단어다. 기업집단이라는 순화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우리나라 특유의 기업문화를 담기에 다른 용어가 적절치 않았던 때문일 게다.
재벌 일가의 비행(非行)이나 비행(卑行)은 해당 기업을 비상(非常) 상태로 만들어 비상(飛上)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오너리스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문지 회장', '라면 상무', '땅콩 부사장'에 이어 운전기사나 경비원을 폭행한 부회장과 회장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갑질은 백번 양보해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최근 하나둘 사실관계가 드러나고 있는 오너 일가와 재벌기업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탈세, 배임, 횡령 사례들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에 이어 최근 비자금 의혹으로 뉴스의 중심에 서있는 롯데그룹이 대표적이다. 롯데는 오너 일가의 부동산 거래와 계열사간 내부 거래, 해외 계열사를 통한 원료 수입 거래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는 수 차에 걸쳐 전방위적 압수수색을 받았지만 조직적인 차원에서 증거 인멸을 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롯데는 검찰의 자료 요청에도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공언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어차피 법정으로 갈 일이기에 최대한 방어를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수조원의 혈세를 받고서도 방만 경영을 끝을 보여준 대우조선해양은 또 어떤가.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규모는 감사원이 밝힌 규모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검찰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규모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전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보유하던 한진해운 주식을 다 팔아치워 10억원대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는 최은영 회장의 모습은 민망하기까지 하다.
결은 다르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방관한 옥시나 배출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도 비도덕적 기업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다. 나름 글로벌 기업으로 명성깨나 날렸던 이들 기업의 행태는 아연 실색케 한다. 인체 유해성에 대한 검증 없이(유해성 검사에 대한 조작 가능성이 높지만) '안전하다'고 광고하며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당시 경영을 맡았던 외국인 경영인들은 우리 검찰의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배출가스와 연비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폭스바겐에 대해서는 검찰에서도 "조폭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쯤 되면 애초에 기업에게 도덕이란 물 위에 뜬 기름과 같은 존재라는 결론을 낳게 한다. 이들 기업에게 '밥'은 '법'보다 우선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이런 비리 기업을 손봐야 할 검찰은 또 어떤가. 정운호 게이트로 촉발된 법조 비리는 서슬 퍼런 법의 준엄함을 보여줘야 할 법조계로서는 영 영(令)이 안 서게 만들고 있다. 현직 검사와 부장판사에게 접근하며 기업가의 비위 무마를 로비한 전관들은 '법'을 버리고 '밥'을 따른 경우다. 검찰은 로비에 연루된 검사들을 조사하고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실패한 로비'라며 선긋기를 하고 있지만 그대로 믿을 국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법조계의 자성이 먼저여야 한다.
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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