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업 지각변동③
집에 흠있어도 도장 찍으면 끝…협회 자정노력에도 개선 안돼
업계선 "자격증 따기 어려워져…전문성은 옛날보다 더 높아"
[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최근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A씨. 새 집으로 짐을 옮기다 심상찮은 문제에 부닥쳤다. 벽체에 누수문제가 있다는 집주인의 얘기를 들었는데, 가벼운 수준이 아니었다. 곰팡이로 뒤덮인 벽면, 썩은 마룻바닥이 보였다. 집주인은 전에 살던 아이한테 피부발진이 있었다는 사실도 전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 눌러앉아 살 수 없다고 생각한 A씨는 중개업소에 항의하며 계약파기와 수수료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개인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며 그대로 입주할 것을 종용했다. 수수료는 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A씨는 집주인과 합의해 다른 집을 구할 때까지만 임시 거주하기로 했다.
무책임한 중개서비스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에는 A씨와 비슷한 중개서비스 불만 사례가 심심찮게 접수된다. 문제가 있는 물건을 중개하고 수수료만 챙기거나, 잘못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등 종류도 다양하다.
부동산중개인의 부족한 전문성과 질 낮은 서비스는 당장 거래 당사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돈 거래가 끝난 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나면 전혀 책임감 없는 얘기만 늘어놓아 소비자를 울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위는 종국에 중개인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소비자원의 2013년 '소비자 시장 성과지수' 조사 결과를 보면 부동산 중개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1.7점이었다. 신뢰도는 53.5점이었다. 모두 낙제 수준이다.
이에 공인중개사협회 등을 중심으로 자정노력이 지속 전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부동산 중개서비스를 경험한 이들의 평가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의 낮은 신뢰도를 고리로 삼아 변호사 등이 중개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 부동산 거래의 0.1%도 되지 않는 새로운 중개시장 도전자들은 더 싸고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호언하며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결국 부동산 중개업 진입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서비스의 질과 가격 수준의 문제가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공인중개사들의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강제를 할 수는 있을까. 서비스업이라면 업체 스스로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워낙 만족도가 낮다보니 제도적인 방안은 없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마저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부동산중개 관련 법규를 운용하는 국토교통부는 위법행위와 관련된 것이라면 몰라도 서비스의 질을 문제삼거나 제재할 방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공인중개사 진입 문턱이 낮아 서비스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견이 많다. 막무가내식 서비스는 공인중개사 자격을 갖지 않은 예전 '복덕방' 수준인 업소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개업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공인중개사를 무더기로 양성하던 시절에서 벗어난지가 10년이 넘었다"면서 "시험의 난이도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최근 시험을 통과해 중개사로 활동하는 이들의 업무의 전문성이나 서비스 마인드는 변호사 못지 않게 높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법 9조와 시행령 13조에 따라 공인중개사들은 자격증 취득 후 개설 등록 전 28~32시간의 실무교육을 이수하면 중개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2014년 6월 연수교육제도가 도입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2년에 한 번씩 교육을 이수하도록 개정됐다. 교육에 불참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인중개서비스와 관련해 소비자들의 불만족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며 "중개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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