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국의 반대로 장승화 세계무역기구(WTO) 상고기구 위원의 연임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장 위원을 반대한 것이 올해 연말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인정을 둘러싼 분쟁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은 1일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미국의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장 위원의 연임 문제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실제 미국과 중국이 장 위원 연임 문제를 두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신화통신은 WTO의 정의를 훼손하는 미국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1995년 WTO 출범 후 상고위원의 연임은 관례였고 지난해 미국과 인도 상고위원도 연임에 성공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자국 상고위원의 연임에는 동의하고 장 위원 연임에 반대한 미국의 태도가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2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WTO에서 2심을 맡고 있는 상소기구 위원들은 국가 간 무역분쟁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대법관' 역할을 한다. 장 위원은 201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상소기구 위원이 됐으며 지난달 31일 1차 4년 임기가 만료됐다. 연임을 위해서는 WTO 분쟁해결기구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데 미국이 장 위원을 반대해 연임이 무산됐다.
앞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1일 사설을 통해 미국이 자신들에 동의하지 않은 장 위원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며 이는 WTO를 전복시키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FT는 미국이 자국을 지지하는 인물들로 WTO 상소기구 위원들을 채워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장 위원 연임을 반대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 내부에서도 비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허핑턴 포스트는 장 위원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판결에 참여했기 때문에 장 위원의 연임을 반대했다고 꼬집었다. 그레고리 샤퍼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캠퍼스 교수도 "미국이 WTO 판결 시스템을 이용해 다른 국가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며 "미국이 WTO의 신뢰성을 망가뜨리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정부는 최근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돌아서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장 위원 연임에 반대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미국과 중국 간에 진행되고 있는 철강 분쟁도 이번 사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4월 중국을 겨냥해 철강 초과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미국은 지난달 결국 관세 보복에 나섰고 중국 정부는 WTO에 맞제소한 상태다. 만약 올해 말 중국이 시장경제 지위를 확보하게 되면 이는 중국이 미국의 반덤핑 조치에 대항할 수단이 될 수 있다.
FT는 다음 주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앞두고 미국이 대 중국 압박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철강 덤핑 관세에 이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US스틸이 '중국 철강 업체가 해킹으로 자사의 정보를 빼갔다'며 요청한 조사를 승인한 것이 그런 예라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관세 보복 조치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WSJ은 보복 관세가 대선 기간 중 나왔다는 것에 주목하며 미국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약속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보복 관세가 철강 업체들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동차 등 다른 제조업체들에는 비용이 늘어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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