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상임위 청문회를 명문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거부권의 법적 근거와 관련 규정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재의요구라고 불리는 거부권은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첨예한 견제ㆍ균형 논리가 작동하는 헌법행위이지만 관련 규정 등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번번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왔다.
우리 정치사에서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지금까지 모두 73건이다. 이 가운데 34건은 법률로 확정되고 37건(철회 2건)은 자동폐기, 철회 등으로 폐기됐다. 19대 들어서 택시법으로 불린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과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ㆍ변경권을 강화한 '국회법'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다시 넘어왔다. 두 법은 현재 계류 상태지만 더이상 본회의가 열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임기 만료에 따른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박 대통령이 상임위 청문회를 명문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거부권 행사 사례는 74건으로 늘게 된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이를 임기 만료때기까지 미루다 자동 폐기시키는 경향을 보여왔다. 16대 국회의 경우 총 4건의 거부권 행사 가운데 2건이 임기만료로 폐기됐으며 17대 국회의 경우에도 2건 가운데 1건의 경우 임기만료로 사라졌다. 19대 들어서는 계류중인 2건 역시 임기만료를 통한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안인데도 매듭짓는 일 없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이유는 헌법에서 규정한 거부권에 대해 관련 규정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 택시법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넘어온 뒤 현재까지 1219일이 지났지만 최종 판단은 미뤄지기만 했다. 청와대의 반대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정치적 결정이 있어야 했지만 이같은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그간 국회에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재의결을 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본회의는 항상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그동안 수차례 제도 개선안이 제출됐다. 거부권 행사후 10일 이내, 또는 6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법안에 대한 가부를 정하도록 하는 규정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법들은 제대로 된 심의 조차 거치지 못했다. 최근에도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각종 법적 혼란이 벌어지는 것은 단순히 선례 부족 뿐 아니라 관련 입법이 이처럼 정밀하게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 거부권 정국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관련 입법이나 법리적 검토는 부족한 것이다.
야당은 이미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회법에 대해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의 경우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으로서는 거부권 행사가 거의 100% 확실해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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