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근철 기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행보가 동북아에 미묘한 긴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동북아의 얽히고 설킨 역사와 국제정치의 실타래 속에 히로시마 방문이 지니고 있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5일 베트남을 출발해 일본에 도착한다. 이어 26일까지는 주요 7개국 (G7)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한 후 27일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함께 원자탄 피폭지인 히로시마 평화 공원을 찾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찌감치 "히로시마에서 미국의 원폭 투하와 그 피해자에 사과하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 22일 방영된 NHK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히로시마 방문 목적은 '핵무기 없는 세계'의 필요성을 호소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에 엄청난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면죄부는 아니더라도 일본의 태평양전쟁 원죄를 승전국 미국이 상당부분 털어내 준 셈이다.
미국과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선 히로시마 방문이 '공짜 점심'은 아니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작해 일본 히로시마에서 끝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과 일본은 과거 미국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던 나라들이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쟁자의 부상 앞에서 과거의 적이었던 일본과 베트남을 든든한 동맹군으로 끌어들여야 할 입장이다.
오바마가 이어놓은 베트남과 일본의 해양루트는 사실상 중국 봉쇄선이다. 2기 오바마 정부의 외교 정책의 근간이었던 '아시아 회귀전략'을 통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그림이다. 마침 중국 부상을 두려워하는 각국의 이해관계도 서로 맞아 떨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일본ㆍ베트남과의 결속을 높이기 위해 구원을 정리하는 통과의례가 필요했고 이번 아시아 순방을 통해 스스로 매듭을 짓고 있는 셈이다.
정작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이후다. 이제 일본의 아베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적극 자임하면서 동북아에서 발언권을 보장받고 정치, 경제, 군사적 위상을 강화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중국도 자신을 겨냥해 짜여지는 봉쇄망에 반발하고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맞불 공세에 나설 공산이 크다.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동북아에서 자신을 압박하면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고할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셈법이 복잡해진 한국의 외교다. 한·미·일 공조라는 외교의 기본틀을 벗어날 수 없지만 중국과의 대립각만을 고집할 처지도 아니다. 더구나 일본과의 역사 문제 갈등도 여전히 봉합 수준인데다가 향후 한반도 관련 협상에서 일본 변수의 증가는 결코 환영할 일도 아니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김근철 기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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