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로 최악 가뭄 겪는 태국 풍년 기원제서…호주 기상청도 동남아에 많은 비 예고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올해 태국에 쌀농사 풍년이 들 듯하다. 엘니뇨(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의 영향으로 태국이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가운데 수백년 전통의 왕실 주관 풍년 기원제에서 강우(降雨) 점괘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방콕 시내 왕궁 인근의 사남루앙 광장에서 와치라롱껀 왕세자 주관으로 풍년 기원제가 열렸다. 쌀농사를 주로 짓는 태국에서는 해마다 본격적인 농사철 직전에 풍년 기원제가 열린다.
불교와 힌두교 요소가 결합된 풍년 기원제는 힌두교 성직자 계급인 브라만이 진행한다. 신성한 소 두 마리가 쟁기질로 갈아엎은 땅에 제사장이 씨를 뿌리는 의식도 행해진다.
풍년 기원제 중 신성한 소들에게는 풀, 볍씨, 옥수수, 참깨, 콩, 물, 쌀로 빚은 술 등 7가지 먹이가 제공된다. 브라만들은 소가 어떤 먹이를 골라 먹는지 보고 그해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 점친다.
올해 행사에서는 신성한 소 두 마리가 바구니에 담긴 먹이 가운데 볍씨와 옥수수를 골라 먹었다. 브라만들은 이를 보고 올해 비가 평년 수준으로 내려 풍년이 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날 풍년 기원제에서 제사장으로 나선 티라팟 프라유라시디 농림협동조합부 장관은 각기 다른 길이의 세 천 조각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그가 고른 천 조각 역시 올해 강수량이 평년 수준에 이르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농사철 엘니뇨가 몰고 온 가뭄으로 쌀 생산량이 15년 만에 가장 적어 고통스러웠던 농민들에게는 반가운 점괘다. 비가 많이 내리면 3년 만에 처음으로 쌀 수확량이 늘게 될 것이다.
태국의 농림협동조합부는 이달 중 비가 내려 20여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고통 받는 중부 평야지대 농민들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국에서는 으레 5월이면 논에 벼를 심는다. 쌀은 농업 소출의 80%를 차지한다. 쌀 생산량은 지난해 2350만t에서 올해 2520만t으로 늘 듯하다. 태국은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이다. 태국의 쌀 수출량은 지난해 980만t에서 올해 900만t으로 줄 듯싶다.
신성한 소의 점괘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풍년 기원제에서도 신성한 소들이 예년 수준의 강우량과 풍년을 점치고 제사장은 비가 많이 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엘니뇨로 태국 전역에 가뭄이 확산하고 주요 저수지들 수위는 1994년 이래 최저로 떨어졌다. 2015~2016년 농사철에 쌀과 보조작물 수확량은 2742t으로 줄었다. 2000~2001년 농사철 이래 최악의 기록이다.
태국 쌀의 기준인 장립종(長粒種) 정곡(精穀), 다시 말해 백미(白米) 가격은 2007년 9월 최저점을 찍은 뒤 14% 올라 현재 t당 399달러(약 46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되는 태국 장립종 조곡(粗穀) 가격은 올해 5.5% 떨어졌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2015~2016년 농사철 세계의 쌀 재고량은 13% 줄어 9020만t을 기록할 듯하다.
호주 기상청은 2015~2016년 농사철에 동남아시아로 가뭄을 몰고 온 엘니뇨가 끝나가고 있다며 올해 후반 라니냐(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아지는 현상)가 나타날 가능성이 50%라고 밝혔다. 호주와 아시아에 비가 많이 올 수 있다는 말이다.
호주 기상청의 예보대로 날씨가 변해도 쌀 소출이 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난달 20일 태국 농림협동조합부는 주요 저수지의 저수량으로 보건대 7월 이전까지 사람들이 쓰기에 충분하지만 농사에 전용할만한 양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농민에게는 7월 이후 우기에 작물을 심으라고 권유했다.
농림협동조합부는 2016~2017년 농사철에 쌀 생산량이 다시 늘겠지만 곡물 총 생산량은 0.8% 줄어 2720만t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태국인의 주식인 쌀을 경작하는 데는 밀이나 옥수수를 경작할 때보다 물 2.5배가 더 필요하다. 이에 당국은 지난 10년 동안 농민들에게 대체작물 재배를 권유해왔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방콕 소재 TMB뱅크는 지난 2월 엘니뇨가 몰고 온 가뭄으로 태국 경제에 840억바트(약 2조7450억원)의 손실이 생길 듯하다고 내다봤다. 자동차ㆍ가전기기ㆍ농기계 같은 내구재 수요가 주는 것은 물론이다. 가전기기 메이커 싱어타일랜드에서부터 농약 제조업체 파토화학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기업의 순이익도 줄었다.
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다. 지난 2년 동안 농업 생산량은 해마다 7~8% 감소했다.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의 싱가포르 주재 이코노미스트인 산티타른 사티라타이는 "태국 농가의 소출 수입 대비 부채가 100%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